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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소설 속 인물들로 그려 본 한국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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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소설 속 인물들로 그려 본 한국인의 정체성

입력
2013.10.1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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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의 강렬함만큼이나 과감하고, 바로 그 때문에 참신하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인 저자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소재로 택한 것은 근대소설이다. 시민의 내적 경험이나 감정 상태에 집중해 광주민주화운동을 분석한 등을 통해 정치학자로서는 독특한 글쓰기를 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의외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왜 한국인이 어떤 존재인지 묻고, 찾기 위해 문학 텍스트를 택했을까.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우리의 근현대 역사에는 이론적, 철학적으로 당대의 사회 문제에 대해 논리를 전개한 체계적인 저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상사적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것이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 근대사상사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이인직, 이해조의 신소설과 이광수 신채호 홍명희 등의 작품에 나타나는 일련의 인물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저자가 추출해내는 한국인의 정체성 또는 정체성과 관련된 담론 중 두 가지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요샛말로 막장드라마라고 해야 할 신소설이 등장해서 읽히던 구한말 10년 남짓의 시기가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현실이던 시대이며 친일파의 등장도 이런 맥락에서 읽어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일진회와 진보회란 실제로는 괴로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이웃나라 일본의 천황의 주권을 들여와서 또는 일본의 정복을 초대하여 도탄에 빠져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 조선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이성에 근거한 사회계약적 발상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해석한다. 전통사회의 윤리는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는 등장하지 않은 이 시기는 신소설의 엽기적인 스토리가 바로 현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시대에 왜 일진회 회원이 100만명을 헤아렸는지, 친일파를 용서까진 못해도 이해할 수 있을지 알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야만의 시간을 지난 뒤 한국인은 어떤 정체성을 만들어 왔을까. 저자는 이광수의 과 신채호의 홍명희의 등을 분석해 나간다. 키워드는 민족주의다. 3ㆍ1운동 직전에 나타난 초기 민족주의자들의 모습은 춘원과 단재가 대표한다. 춘원의 민족주의는 서구에서 수입한 근대인이다. 지식인이지만 실은 서구의 지식을 소개하고 가르치는 지식중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민족을 사랑하는 듯 보여도 그들을 연민하고 동정하는 존재다. 이에 비해 단재가 제시한 민족주의자는 고독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로 신의 명령에 따라 끝없이 싸우는 존재였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결과로 등장한 두 유형의 민족주의를 저자는 아직 온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욕망의 덩어리'로 뭉뚱그린다.

그 숙제는 1930년대 이광수의 에서 서서히 풀려나간다. 춘원은 이 소설에서 당시 조선 지식인의 공통적인 숙제였던 '강한 조선인' 만들기에 성공했다고 저자는 본다. 춘원이 만든 강한 조선인은 사랑을 실현하려는 집요함이 두드러진다. 이에 대비되는 저항적 민족주의 계열의 작업이 홍명희의 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렇게 힘을 길러가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핵심으로 자리잡은 것은 '반지성주의'라고 저자는 꼬집었다. 지식인들의 무력감, 좌절 같은 것들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고 '식민지를 겪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문제'일 수도 있다. 결국 해방이 되었을 때 한국인은 너무나 거칠었고 오랫동안 박탈당해 온 힘의 추구에만 혈안이 된 존재로 남게 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이 책은 신선한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자료의 부족함 때문에 그가 택한 문학 텍스트 분석은 결국 소설 속 이야기가 당시 현실에 얼마나 부합한 것일까 하는 의문에 원초적으로 충분하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후속으로 저자는 광복 이후 시기를 분석해 '한국인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설 계획인가 보다. 같은 방법론을 택하더라도 그 책은 이번보다 훨씬 신뢰할 만한 한국인의 정체성 분석이 될 것이다. 문학 텍스트의 비유 뒤에 날것으로 살아 있었던 현실을 더듬을 자료가 훨씬 많을 테니까.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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