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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산·억압·인식의 변화 과정서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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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산·억압·인식의 변화 과정서 접근

입력
2013.10.1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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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20세기 지성사에 큰 자취를 남긴 프랑스 출신 철학자 어니스트 겔너의 역사철학을 집대성한 책이다. 겔너는 민족주의 이론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우리에게는 라는 단 한 권의 책으로만 알려져 조금은 생소하다. 1995년 사망하기까지 합리주의를 옹호하며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맞서 싸운 전투적인 논객으로 전 세계 학계에 각인된 그는 어떤 진영이나 학파도 형성하지 않고 통섭 노선을 지켜왔다.

1988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이른바 '관념의 뿌리'를 찾아내고 인류 역사에 대한 관점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서술한다. 저자는 역사를 예측할 수 없는 유기체로 규정하고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눈으로만 재단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또한 인류 역사에 작용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생산'과 '억압', 그리고 '인식'을 쟁기와 칼, 그리고 책으로 빗대어 석기시대부터 현대 사회까지 꼼꼼히 흩어 내린다. 겔너가 근대 역사에 집중해서 쓴 첫 번째 책인 에서 보여준 통찰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를 3단계로 구분하고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두 번의 큰 도약을 거치며 생산과 억압과 인식이 어떻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농경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인류는 이른바 농업혁명을 겪고 저장할 수 있는 잉여를 갖게 된다. 덕분에 인류는 수렵사회와 달리 풍족한 생산물을 유지할 수 있게 되지만 이를 차지하기 위한 지배 계층은 더욱 공고해지고, 권력층이 빠르게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계급 투쟁, 그리고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권력의 자리매김과 통치를 위한 인식의 보편화를 저자는 연역적으로 풀어 보인다.

저자는 역사를 파악하는 올바른 눈을 정립하기 위한 독창적이고 심오한 통찰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그의 관심이 상당 부분 집중된 '근대로의 이행'을 설명할 때 근대가 수많은 요소의 결합과 우발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문화, 언어, 감수성, 권력, 이데올로기, 테크놀로지 등 무려 15가지의 요소들을 제시한다. 이들 요소가 어떻게 배합되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의 방향이 펼쳐졌을 것이란 설명이다.

저자는 과학적 합리주의, 자유주의 정치체제, 산업 경제의 지지자로서 세계 정세를 관찰한 학자이다. 사회주의를 싫어했으나 시민사회를 중시했고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정치 권력이나 정치 운동에 반대해 왔다. 이 책에도 이 같은 그의 신념이 아로새겨져 있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계급의 불만을 억눌러야 할 필요 때문에 중앙에서 강요하는 새로운 신앙이 부활하게 될 것인가'라고 물으며 파시즘의 부활 조짐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미궁과 같다. 모든 인문학의 경계를 뛰어넘는 저자의 해박함 탓에 독자는 길을 잃을 정도로 난해함을 느낀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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