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립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 "피터 힉스·프랑수아 엥글레르 등현대물리학의 힘의 법칙 넘어선 힉스 보존의 원리 이론적 발견 공로"표준모형의 모든 부분 검증하고 올바른 자연의 법칙 이해 가능해져
수상자가 발표되기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은 201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일 것이라고들 예상했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가 건설한, 역사상 최대의 과학 실험인 거대한 하드론 충돌장치(LHC)에서, 두 실험 팀이 힉스의 이름을 딴 입자인 '힉스 보존'의 증거를 최초로 보았다고 2012년 7월 4일 발표했고, 올해 들어서는 데이터 전체를 분석해서 힉스 보존을 발견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지난 10월 8일 왕립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는 피터 힉스와 벨기에의 프랑수아 엥글레르를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그런데 과연 왜 그들이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일까? 새로운 입자를 발견해서? 그들은 이론물리학자인데 입자를 발견하는 데 어떻게 공헌한 것일까? 또,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면 무조건 노벨상을 주는 걸까? 아카데미가 발표한 수상 이유를 읽어보면, "아원자 입자의 질량의 근원을 인간이 이해하게 해주고, 최근에 CERN의 LHC에서 ATLAS와 CMS 실험 팀이 그들이 예측한 기본입자를 발견함으로써 확인된 메커니즘을 이론적으로 발견한 공로"에 대해 상을 수여한다고 돼 있다. 좀 길지만 가만히 읽어보면 그저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다고 상을 준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업적이 과연 무엇이기에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일까?
모든 물질을 이루는 힘은 현재 우리가 알기로는 네 가지가 있다. 우리가 쉽게 느낄 수 있는 중력, 원자를 만들고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현상을 일으키는 전자기력, 원자핵을 만드는 매우 강한 핵력, 원자핵 속에서 일어나는 약한 핵력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은 20세기에야 비로소 인간이 알게 된 힘이다. 이 힘들은 원자핵보다 작은 세계에서만 작용하는 힘이기 때문에, 원자핵을 알지 못했던 시대에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 왜 이 힘들은 그렇게 작은 범위에서만 작용할까? 이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이들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무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중력과 전자기력은 질량이 없는 입자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무한히 먼 거리까지 작용하지만,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무거울수록 힘이 전달되는 범위는 짧아진다.
현대물리학에서 힘이란 '게이지 대칭성'이라는 특별한 대칭성으로 설명된다. 게이지 대칭성이 존재하려면 '게이지 보존'이라는 입자가 있어야 한다. 이 입자가 바로 힘을 전달하는 입자다. 따라서 게이지 보존이 무거우면 그에 해당하는 힘은 짧은 거리에만 미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게이지 대칭성이 있으면 게이지 보존은 질량을 가질 수 없다. 즉 게이지 대칭성이 있으면 힘이 먼 거리까지 작용해야 하고, 힘이 짧은 거리에만 작용하려면 게이지 대칭성이 없어져서 힘을 전달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까 무거운 게이지 보존이라는 말은 둥근 사각형처럼 자체로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
이 모순된 상황은 1964년에 피터 힉스를 비롯한 몇몇 이론물리학자들이 무거운 게이지 보존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냄으로써 해결된다. 영국 에딘버러 대학의 힉스, 벨기에 브뤼셀 대학의 엥글레르와 브라우, 그리고 미국의 구랄니크, 하겐, 키블, 이렇게 세 팀은 우주 전체에 '힉스 장'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종류의 양자 장이 존재하고, 힉스 장이 0이 아닌 특정한 값을 가져서 우주 전체의 상태를 정해주면, 이 상태에서는 게이지 대칭성이 깨진 것으로 나타나서 게이지 입자가 질량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이것이 바로 노벨상 수상 이유에서 힉스와 엥글레르가 이론적으로 발견했다고 한 메커니즘으로, 힉스의 이름을 따서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부른다. 특히 힉스의 논문은 이 경우 새로운 입자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 입자가 바로 힉스 보존이다.
리사 랜들의 (원제 Higgs Discovery)는 제목 그대로 힉스 입자와 힉스 메커니즘에 대해서 정확하고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이다. 1962년생인 랜들은 현재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의 교수이며, 가장 각광받는 젊은 이론물리학자로서, 특히 이론물리학 분야로는 하버드 대학 최초로 여성으로 종신 교수직을 받은 사람이다. 이 책은 2012년 7월 4일 CERN에서 힉스 보존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후에,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론물리학자가 그 발견 과정과 의미를 해설하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논의한 책이다.
힉스 입자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책에는 랜들이 이전에 발표했던 대중을 위한 과학책인 (2006년)와 (2011년)에서 힉스 보존에 관해 설명한 부분을 발췌하여 함께 튼?있다. 이 책을 읽으면, 대칭성이 깨지고 게이지 보존이 질량을 얻는 과정뿐 아니라 힉스 보존이 가속기에서 만들어지고 붕괴해서 검출기에서 검출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한편 는 힉스 입자에만 집중하는 소책자이므로, 힉스 메커니즘이 도입되는 맥락과 입자물리학 전반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입자물리학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졸저 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LHC가 막 가동하기 시작할 무렵, 과학의 역사에 획을 긋게 될 이 거대한 실험을 소개하고 싶어서 쓴 책이다. 이 책에는 원자부터 원자핵, 양성자와 중성자를 거쳐 쿼크에 이르는 물질의 근본을 향한 여행, 그리고 기본입자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과 이를 검증하기 위해 가속기가 발전해서 LHC에 이르는 과정을 모두 담고자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LHC에서 발견된 힉스 보존은 힉스가 예측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힉스와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한 것은 강한 핵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입자는,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가 1967년에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기술하는 표준모형의 방정식을 만들면서 약한 핵력에 힉스 메커니즘을 적용해서 나타나는 힉스 입자다. 게다가 대칭성이 깨질 때 전자와 같은 물질이 질량을 얻는 과정은 힉스 메커니즘과는 상관없이, 와인버그가 만든 표준모형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발견된 힉스 보존의 정확한 모습을 제안한 사람은 사실 와인버그다. 강한 핵력이 짧은 거리에서 작용하는 이유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힉스의 이론이 나온 훨씬 뒤에야 밝혀졌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에서 만날 수 있다.
결국 노벨상이 주어진 힉스와 엥글레르의 업적은, 이번에 발견된 입자를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대칭성이 깨지는 메커니즘 자체를 만든 것이다. LHC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된 것은 그 메커니즘이 정말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증거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야 표준모형의 모든 부분을 검증했으며, 표준모형이 적용되는 범위까지는 올바른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다고 말해도 좋겠다. 힉스 메커니즘과 같은 추상적인 원리가 정말로 자연에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사실은 전율이 일어날 만큼 놀라운 일이다.
이강영 경상대학교 물리교육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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