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시절인 2009년, 사정기관 총수로 거론되던 A씨에게 최고 실세의 보좌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보좌관은 "축하한다. 이번에 큰 자리를 맡게 될 것 같다. 그러니 와서 우리 어른한테 인사하라"고 했다. A씨가 황당해하자 그 보좌관은 더 황당해 하는 목소리로 모 씨를 거명하면서 "그 양반은 어른한테 와서 무릎 꿇고 인사하고 충성을 서약했다"고 했다. 뿐만 아니었다. 당시 잘 나가는 장관, 공기업 사장, 금융회사 회장들을 줄줄이 거론하면서 모두 찾아왔다는 얘기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A씨는 전화를 끊고 고민을 거듭하다 찾아가지 않았다.
오래 전 신문사를 퇴직한 B씨도 MB정부 초기 이 실세를 만나러 갔다가 씁쓸한 경험을 했다. B씨는 몇 년 전 자신이 임원으로 있었던 작은 공기업의 사장 자리를 부탁하기 위해서 찾아갔다. B씨는 실세와 막역한 사이였다. 그 실세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서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허주(虛舟ㆍ고 김윤환 의원의 아호)의 계보였고, B씨는 허주계를 담당한 대표적인 기자로 한때는 형님, 동생으로 지냈다. B씨는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의상 얼마간의 '성의'를 마련해 갔다. 한참 애기를 나눈 뒤 돈 봉투를 내놓으니 예상과는 달리 실세는 의례적인 거절도 하지 않고 그냥 받았다.
이 두 가지 사례를 보면 MB정부 인사가 어떠했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넉넉하지 않은 친한 기자 출신한테도 돈을 받았다면, 다른 경우는 안 봐도 천리다. 또한 기관장을 임명하기에 앞서 실세 당사자도 아닌 보좌관이 충성서약을 하러 오라고 얘기할 정도면, 이들이 국가 중추기관의 사명과 책임이 무엇인지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고 국가와 정권을 혼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비화를 들었을 때 조선 말기 나라를 쇠약하게 했던 매관매직이나 세도정치의 폐해가 떠올랐다. 특히 청와대가 입만 열면 강조했던 전문성과 능력이라는 인선 기준이 허울좋은 가식에 불과했다는 느낌이 들어 무척 우울했다.
또 다른 차원의 사례가 있다. 참여정부 후반 수석을 지냈던 C씨는 MB정부 출범 직후 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고향의 대학에 월 250만~300만원을 받는 2년 임기의 겸임교수로 가고자 했다. 이 프로그램은 전직 고위직에게는 활동할 공간을 주고, 대학에는 이론만이 아닌 정책결정의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는 좋은 제도였다. 교육부도 당연히 승인을 했다. 그러나 막판에 청와대 인사팀이 제동을 걸었다. C씨만이 아니라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겸임교수에서 탈락했고,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은 자신을 원하는 대학이 있었지만 현명하게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역대 어느 정권도 대학이 원하고 전 정권의 각료나 수석이 가고자 하면 막지 않았던 관행을 MB정부는 과감히 깨뜨렸다. 국민통합은 그저 대선 때 국민을 현혹하기 위한 사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정도는 약과였다. 영혼이 없다는 공직사회에도 숙청의 바람이 불었다. 다 아는 얘기지만 MB정부 실세에 줄을 대지 못한 차관이나 실장들은 대부분 옷을 벗었다. 심지어 상당수 국장들도 물러나야 했다. 열심히 일해 참여정부 때 재수없게 고위공무원으로 발탁된 것이 오히려 해가 된 것이었다. 그 폐해는 심각했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사회에 실세 정치인에 줄을 대야 살아남는다는 절박감이 광범위하게 퍼졌고, 임기 후반에는 승진하지 않으려는 희한한 경향까지 생겼다.
인사를 보면 그 정권의 품격과 수준이 다 드러나는 법. MB정부의 인사는 참으로 남루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미뤘던 공공기관장 인사가 있을 모양이다. 나라의 미래와 박근혜 정부의 품격을 위해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인사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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