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이 2010년부터 1,000여명 이상의 고객계좌를 불법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회사가 지켜야 할 기본 윤리를 져버린 사건이라는 지적이다. 정보를 조회 당한 고객 명단에는 박지원 박병석 박영선 정동영 정세균 민주당 의원 등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김종빈 전 검찰총장 등 정ㆍ관계 주요 인사가 포함돼 있다. 더욱이 금융당국은 이미 종합감사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고도, 신한은행이 일부 재일교포 주주의 계좌만 무단 열람한 것으로 결론을 맺어 봐주기식 조사를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7일 민주당 김기식 의원이 공개한 신한은행 '고객종합정보'(CIF) 조회기록의 로그파일 자료에 따르면 2010년 4~12월 동안 신한은행 경영감사본부 직원들이 1,000여명이 넘는 고객 정보를 매달 수천건씩 조회했다. 이 당시는 라응찬 산한지주 회장과 신상훈 사장 간의 갈등이 고조되던 기간이다. 이 갈등은 2010년 9월 신한은행이 당시 신한금융지주 신상훈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표면화했다. 그 이면에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 회장에 호남 인사인사가 앉는 걸 원치 않았고, 이런 기류에 영합한 라응찬 지주 회장 등이 차기 회장 1순위였던 전북출신 신 사장을 무리하게 고소했다는 의혹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불법 조회 기록에도 신 전 사장의 친인척과 그 지인들, 신한은행 임직원과 그 가족들, 양용웅씨 등 재일동포 주요주주, 신한 사외이사들 외에 호남 출신 정치인이 다수 포함돼 있다. 심지어 호남출신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당시 한나라당 의원)도 조회 대상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부 경영다툼에 이용하기 위해 개인계좌까지 무차별적으로 조회해 금융기관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데 있다. 현행 신용정보보호법은 정보 주체의 동의가 있거나 법률에서 허용하는 경우에만 계좌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신한은 민주당 지도부와 이용희 등 국회 법제사법위ㆍ정무위 소속 의원들, 전ㆍ현직 경제관료, 금융당국의 고위 인사들까지 무단 조회했다. 김기식 의원은 "은행 내부결재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고객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외부 인사들까지 광범위하게 조회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윤리마저 결여됐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이미 같은 사안에 대한 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2010년 11월과 지난해 11, 12월 두 차례 현장검사를 실시한 결과, 고객 272명의 개인정보를 1,621회 부당 조회했다고 7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신한측의 '내부검사 목적'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기관주의'로 일단락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료가 방대해 임직원 외 일반인의 정보를 불법 조회했다는 사실은 찾지 못했다"며 "불법 사실이 명확해질 경우 추가검사 등 대응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 이미 2010년과 2012년에 기관경고를 받은 이력이 있어 금감원의 재검사 결과 불법 조회 사실이 확정될 경우 3진 아웃 조항에 따라 '영업정지' 수준의 중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사태는 연임을 노리는 한동우 지주회장에게 악재가 될 전망이다. 한 회장의 재임기간에 신한사태 관련, 고객 개인신용정보를 무단 조회한 사실이 적발됐고,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 또한 그룹차원에서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업이 가장 중시해야 할 고객의 신뢰를 무너뜨린 이번 사태에 대해 한 회장과 서진원 은행장은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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