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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18일] 당신이 살고자 하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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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18일] 당신이 살고자 하는 방향

입력
2013.10.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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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바깥이 궁금한 계절. 하늘은 푸르고 꽃은 피어나고 축제도 많다.

얼마전 전주세계소리축제에 다녀왔다. 첫날 개막 공연은 세계의 여성 음악인들이 한 무대에 올라 각국의 음악을 선보였다. 미국, 캐나다, 인도, 독일, 일본을 비롯해 우리 국악인들도 저마다 기량을 발휘했다.

특히 감동을 받은 것은 시리아 여가수의 노래였다. 노랫말은 알 수 없었지만 서정적이면서도 처연한 음악을 들으면서 먼 곳에 가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물론 무작정 먼 곳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틀 뒤에 열리는 시리아 여성의 무대가 궁금해 역시나 공연을 관람했다. 수피 음악들은 가히 굉장한 세계를 엿보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그녀의 음악이 더 저릿하게 들려왔던 것은 지금 시리아의 불행을 생각해서였는지도, 그녀의 음악이 평화를 부르는 염원으로 들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랍세계는 이제 곧 하찌(대순례 기간)을 맞는다. 이슬람교의 발상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순례자들은 긴 여행을 준비한다. 메카가 자리하고 있는 경제도시 젯다는 이 무렵 엄청난 교통대란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그 규모는 어마어마해서 약 200만 명의 순례자들이 그곳을 찾는데 약 140만 명은 주변 아랍국가에서 참여한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서 만난 적 있는 한 노인은 이 기간에 메카에 두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단신으로 걸어서 다녀왔다고 했다. 무려 가는 데만 45일.

이슬람교의 5대 의무로 자카트(기부), 금식(라마단), 신앙고백, 하루 다섯 번의 기도, 그리고 하찌(성지순례)를 꼽는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5대 의무에서 읽혀지듯 그들의 신앙심은 유난히 신실하고 두터워서 아랍국가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순례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물론 메카에 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번 돈으로만 순례를 떠나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여유가 없는 사람은 죽을 때 한으로 남기까지 한다.

어딘가를 향한다는 것. 그것은 종교를 앞세우건 마음의 방향이 그렇건 무척이나 신성한 일이다. 바로 선 마음의 중심이 가리키는 방향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삶에 있어 최선을 다하게 하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본성을 유지하게 한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는 해녀축제가 열렸다. 우리나라의 축제가 점점 기발한 발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올해 6회째를 맞는다는 해녀축제는 해녀가 제일 많이 산다는 구좌읍 하도리의 해녀박물관 일대에서 벌어졌다. 그 축제에서 나는 또 인상 깊은 장면을 보고 말았다.

제주도 해녀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들려준다고 했을 때 나는 그저 흔한 가곡 몇 곡을 부를 줄 알았다. 그런데 창작곡이다. 가만 듣고 있자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다. 특히 가사가 그랬다. '포근히 펼쳐진 오름은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었죠. 이 땅 위에 상처받은 우리네 마음을 어머니의 품처럼 안았죠.'라는 가사가 목께를 푹 적시더니 후렴 부분인 '평화의 땅 구좌, 신비의 땅 구좌, 풍요의 땅 구좌, 보람의 땅 구좌, 정의의 땅 구좌, 희망의 땅 구좌, 구좌의 이 땅을 걸어요.' 대목에선 눈이 벌개져서 혼났다. 내가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땅에서 그곳 사람들이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공감하다가 그만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한 분씩 해녀들을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문화라는 게 별건가.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생히 보여주는 것, 핍진했던 과거를 오늘의 희망으로 덧씌우는 것, 그것이 문화의 정체가 아닌가 싶다. 그런 문화는 우리가 사는 땅을 따뜻하게 데우고 우리가 살고자 하는 방향에다 불꽃을 쏘아 올려준다.

이병률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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