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6년째인 여성 새터민(북한이탈주민) 이모(26)씨. 경기도의 한 제조업체에 다니며 착실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신변보호 경찰관은 성가신 존재다. 딱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이씨가 "근무시간 중에는 연락하지 말라"고 요구하자, 경찰관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살고 있으니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정착 11년째인 새터민 김모(43)씨도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의 지나친 관리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불시에 직장에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물어보는 경찰관 때문에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김씨는 "'중국에 다녀왔느냐' '북에 돈은 보내느냐' 등 행적 조사를 당할 때면 범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경찰 때문에 모멸감을 느낀다는 새터민들이 주변에 많다"고 털어놨다.
모든 새터민들은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에 따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해당 거주지역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범죄자를 대하듯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찰의 관리 방식은 도가 지나치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17일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거주 새터민은 2만5,000여명. 경찰은 내부지침에 따라 특별관리 기간(북한 이탈 후 5년간)에는 담당 경찰관을 배치, 신변보호와 함께 동향을 감시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일반관리로 전환돼 상시적 신변보호 대상이 된다. 명목상 신변보호이지만 정작 담당 경찰관이 개별적으로 새터민을 접촉하는 과정에선 인권침해 시비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일부 새터민들이 신변보호 담당관의 과도한 사생활 침해를 경찰청에 호소했고, 담당 경찰관과 시비가 붙었다가 경찰청의 중재로 해결된 사례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하지만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인권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제도적 조치는 미흡하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새터민 보호와 관련한 업무지침은 '접촉할 때 미리 전화하고 접촉 시 개방된 장소를 이용하라'고 권고한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새터민의 70%를 차지하는 여성 새터민을 관리하는 여경 등 전담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용근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팀장은 "새터민들에 대한 인권 침해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개별 상담을 할 때나 직접 방문 시 담당 경찰관이 준수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거나 최소한 대화 기술이라도 교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또 "새터민 스스로도 이유 없는 소환을 거부하거나 과도한 사생활 침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경찰청 관계자는 "정착한 지 10~20년이 지나도 초기와 동일하게 신변보호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불쾌하게 느끼는 새터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최근 위장 탈북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해외로 출국한 새터민의 동향이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관리 강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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