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카톨릭 성지순례길인 카미노데산티아고를 걷기 시작한지 보름이 지났다. 내게는 두 번째 걷는 카미노다. 그 사이 카미노는 8년 전 처음 걸었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이 길을 걷는 한국인의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이다. 비유럽 국가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할 정도다. 덕분에 구글 번역기를 돌려 '러시아어 샐러드'나 '대구와 박제 고추' 같이 웃음이 터지는 한글 메뉴판을 만든 식당도 생겨났다. 어떤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숙소)의 입구에는 "초강추 매운 스파게티 - 한국인의 입맛에 맞아요" 같은 글이 붙어있기도 했다. 하지만 카미노의 가장 큰 변화는 상업화다. 사설 알베르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무료로 개방하던 마을 성당이 입장료를 받는 방식으로 변한 곳도 있었다. 어떤 마을의 성당에서는 순례자를 불러들여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며 기부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길을 먼저 걸었던 이들이 트럭을 세워놓고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건네던 음료는 동네 주민들의 노점으로 변했다.
몰라보게 변해버린 카미노를 보며 실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카미노에서만 가능한 어떤 경험들은 이런 실망감을 지워주기에 충분했다. 순례자들에게 세족식을 해주기로 유명한 알베르게가 있다. 이탈리아인 부부가 운영하는 그 알베르게는 바로 전날 문을 닫고 봄까지의 긴 휴식에 들어간 차였다. 그 사실을 모르고 그곳을 찾아온 우리를 위해 부부는 잠긴 문을 열고 세족식을 해주었다. 예순은 족히 되어 보이는 부부였다. 남편이 순례자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의 기도를 하는 동안 아내는 냄새 나는 발을 씻어주고, 발등에 입을 맞춰주었다. 나는 그 세족식에 무너졌다. 혼자 걸었던 8년 전의 카미노와 달리 이번에는 방송촬영을 위해 11명의 사람들이 함께 걷던 중이었다. 우리는 걷는 이유부터 살아온 길, 나이와 직업까지 모든 게 달랐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처음 만나 24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내 안에는 피로가 쌓여갔다. 내 마음의 문은 꼭 닫아 건 채 그들 탓을 하며 불평불만을 일삼던 차였다. 처음 만나는 이의 발에 입을 맞추는 이가 있는데, 열흘을 함께 보낸 이들과 마음을 맞추는 데 소홀하던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세족식이 끝난 후 알베르게의 뒷마당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통곡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기적인 욕심과 헛된 기대를 내려놓자고. 함께 걷는 이들이 내 마음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심을 내려놓고, 카미노가 언제나 변하기 않고 있어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내려놓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들에 조바심치는 나를 내려놓기로. 카미노는 우리 인생의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다짐은 순간이고, 현실의 부대낌은 여전했다. 며칠 후, 카미노는 변하지 못한 나를 다시 내려치며 주저앉혔다. 순례자들이 고향에서 돌을 가져와 자신의 죄와 이번 생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는 크루즈델페로 십자가 앞에서였다. 우리 일행 중에는 자식을 범죄로 잃은 어머니가 있었고, 그녀는 같은 처지인 다른 어머니들의 편지와 유품을 그곳 십자가에 놓고 가기 위해 여기까지 온 터였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그녀를 보며, 할 수만 있다면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들로 힘들어 하던 내 모습이 우습기만 했다. 십자가 아래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일 거라고 믿은 나는 그녀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그녀도 울었다. 눈물로 얼굴이 다 젖도록. 그렇게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을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온 순례자 조세핀은 나를 위해 함께 울어주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그날, 나는 깨달았다. 카미노는 여전히 영적인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수한 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이 길을 걸어갔다. 그들이 남긴 상처와 슬픔, 웃음과 눈물이 길 위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카미노는 혼자 걷고 있다 해도 결코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다. 길고 긴 세월의 힘에 저 홀로 깊어지고 그윽해진 길이 카미노다. 그러니 카미노를 찾을 땐 부디 두려워 말고 혼자 오시기를.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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