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국가 부도 위기로 몰고 간 의회가 16일(현지시간) 임시 합의안을 가결 처리하자 워싱턴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국가 부도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국회의사당 로비의 시계도 이날 밤 멈춰 섰다. 세계 경제마저 위협한 이번 대치의 후유증이 큰 탓에, 정치권의 파국 모면에 환호가 들리지 않는다.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예산 배정을 반대하며 정부폐쇄(셧다운)를 주도한 공화당은 피해가 막심하다. 오바마케어의 수정조차 이끌어내지 못하며 전리품을 하나도 챙기지 못한데다 지지도 역시 역대 최하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PPP는 셧다운으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 될 여지가 더 좁아졌다고 분석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슷한 사태가 또 일어난다면 하원을 민주당에게 내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있다. 셧다운의 정치적 배후로 지목되는 보수 유권자 모임 티파티 역시 손실이 크다. 퓨리서치에 따르면 티파티에 대한 일반인의 부정적 여론이 49%로 치솟았고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반감이 높아져 리버럴한 공화당원 사이에선 6월 46%였던 지지율이 27%로 급락했다. 셧다운을 최종 결정한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초반부터 당내 강경 보수세력에 휩쓸리다 주도권을 빼앗기고 결국 상원이 마련한 합의안에 손을 들어준 격이 됐다. 보수 논객들은 베이너가 자결이냐 굴복이냐의 선택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평가했다. 베이너는 "우리는 훌륭한 전투를 치렀다"면서도 "우리가 당장 승리한 것은 아니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가 당내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흔들리자 실질적 하원의장은 공화당 전략을 하원에 제공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란 말까지 나왔다. 텍사스 출신의 크루즈는 이번 사태의 패자이면서 승자로 평가된다. 그는 21시간에 걸친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로 오바마케어에 예산이 배정되는 것을 막는 아이디어를 처음 냈고 이후 하원의원들을 움직여 셧다운 사태를 주도했다. 이번 사태에서 공화당이 승리했다면 정치적 스타가 될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당 안팎에 반대세력만 구축한 꼴이 됐다. 하지만 그는 티파티를 비롯, 당내 보수 세력에 확고한 인상을 심어줘 정치적 입지를 넓혔다.
민주ㆍ공화 양당의 상원 원내대표인 해리 리드와 미치 매코널은 초당적 합의안 마련을 주도하며 극적인 타협을 이끈 주인공으로 평가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오바마케어를 지켜내는데 성공했지만 셧다운 내내 이렇다 할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가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방장관으로 중용했던 리언 패네타는 "우리는 지도력이 아닌 위기에 의한 통치를 하고 있다"며 오바마의 지도력을 비판했다.
셧다운 기간 중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취소되면서 외교적으로도 미국의 미래 전략적 이익에 중대한 훼손이 가해졌다. 결국 16일간 정부를 폐쇄시킨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대치는 승자는 없는 게임으로 끝난 모습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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