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살던 김태완(당시 6세)군은 1999년 학원에 가던 중 온 몸에 황산을 뒤집어썼다. 극악무도하게도 범인은 김군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입을 벌리고 비닐에 담겨있던 황산을 들이부었다. 황산은 김군의 얼굴은 물론 식도와 몸 속을 녹였다. 두 눈을 잃고 전신3도 화상을 입은 김군은 처절한 고통 속에 49일을 버티다 숨을 거뒀다. 7개월 뒤면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난다. 그 후로는 범인을 잡아도 처벌하지 못한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한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 등 3대 미제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 공소시효는 범죄 발생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국가의 소추권과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다. 법적 안정성, 오랜 시간이 흐른 데 따른 증거판단의 어려움, 장기간 도피생활로 범인이 처벌에 준하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리라는 것이 근거다. 3대 미제사건의 공소시효가 2006년 일제히 끝나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정부는 이듬해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살인죄 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렸다. 그러나 소급적용이 안돼 2007년까지 발생한 살인죄 공소시효는 여전히 15년이다. 미국은 살인죄에 공소시효가 없다. 그래서 수십 년 전 범죄라도 흉기와 부검ㆍ감식 증거물 등을 영구 보존해 장기 미제사건 재수사에 나선다. 일본, 독일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인 추세다.
▲ 공소시효는 설득력이 약해졌다. 과거와 비할 수 없이 수사기법이 과학화한 덕분이다. 극미량의 체액으로도 DNA 개별화가 가능하고, 증거능력으로 인정받는다. 시간의 제약은 큰 난관이 되지 못한다. 범인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리라는 것도 막연한 기대에 불과할 뿐 흉악범일수록 재범률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 정부는 지난해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애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으나 국회는 1년 이상 방치하고 있다. 수사재원의 한계가 있다면 미국처럼 여건에 맞춰 우선순위를 두면 된다. 공소시효를 정해 흉악범에게 미리 면죄부를 줄 필요는 없다. 유족은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 뜬 눈으로 밤을 새며 또 한번 피눈물을 삼킨다. 극악범죄는 끝까지 추적한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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