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산수' '바보산수' 등 독자적 화풍으로 한국 전통 수묵화의 새 경계를 연 운보 김기창(1913~2001)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부암동의 서울미술관이 기념전을 마련했다. '예수와 귀 먹은 양'이라는 제목으로 17일 시작한 이번 전시는 그동안 일반에 잘 공개되지 않았던 '예수의 생애' 연작을 중심으로 시기별 주요 작품 60여 점을 선보인다. '귀 먹은 양'은 일곱 살 때 장티푸스를 앓고 청각을 잃어버린 운보를 가리킨다.
'예수의 생애' 연작은 운보의 한국식 기독교 성화다. 한복 차림에 초가집, 한국 산수가 등장하는 게 특징이다. 예컨대 동정녀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무염 수태 소식을 듣는 장면을 그린 '수태고지'에서 마리아는 댕기머리에 노랑 저고리, 녹색 치마 차림으로 한옥 방 안에 앉아 물레를 잣다가 날개옷을 입고 찾아온 천사를 보고 깜짝 놀란다. 예수와 열두 제자는 갓 쓰고 도포 입은 모습이고, 여인들은 쓰개치마를 쓰고 있다. 이 연작은 운보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추모전 이후 11년 만에 공개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태양을 먹은 새' '태고의 이미지' '춘향 시리즈' 12폭 병풍, 문자도 등 운보의 다른 그림들과 함께 생전에 쓰던 양말과 고무신, 붓과 벼루 등도 한데 모아 고인의 체취를 전한다. 내년 1월 19일까지 전시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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