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자 이야기를 해볼까? 우리나라에서는 신문의 날인 4월 7일을 중심으로 기념식과 표어 공모 등의 행사가 벌어진다. 4월 7일이 신문의 날이 된 것은 이날이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일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휴일이 거의 없었던 시대에 4월 7일은 5월 5일 어린이날과 함께 모처럼 쉬는 ‘명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토요 휴무를 하는 데다 일요일에 교대근무를 해서 그런지 신문의 날에도 기자들은 쉬지 않는다. 방송기자들은 방송의 날(9월 3일)이 되면 더 바쁘다고 푸념한다. 각종 행사는 물론 특집 등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달픈 것은 아마도 방송기자들이 더할 것 같다
방송의 날은 1947년 9월 3일 미국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국제무선통신회의에서 한국이 호출부호 HL을 배당받은 날이다. JO라는 일본 호출부호를 사용하다가 독립국가로서 독자적 호출부호를 받은 것이다. 1957년 4월 7일 창립된 한국신문편집인협회(초대회장 이관구)가이날부터 한 주일간을 신문주간으로 설정했으니 방송의 날은 10년 먼저 정해진 셈이다.
중국에는 기자의 날이 있다. 11월 8일이다. 쉬는 날은 아니지만 역사가 길다. 중국 국민당은 1933년 9월 1일을 기자의 날로 정했다. 당의 선전역할을 수행하는 기자들의 사기를 올려주려는 취지였는데, 중국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1949년까지 유지됐다가 이후 흐지부지됐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정부도 이런 날이 필요했던지 1999년 9월 18일 기자의 날을 부활해 국가기념일에 포함시켰다. 대신 날짜는 9월 1일에서 중국기자협회 창립일인 11월 8일로 바꿨다고 한다. 매년 당 차원의 기념일 행사를 갖고 정부 차원에서 우수기자를 표창한다. 언론자유가 없던 나라일수록 이런 데는 더 신경을 쓰나 보다.
일본은 매년 10월 15일 신문주간이 시작돼 기념행사를 하는데, 첫날에는 관례에 따라 신문 사설도 쉰다. 지금이 바로 신문주간이다. 올해 신문주간의 표어는 ‘어느 날에도 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기사가 있다.’라는 엄숙한 내용이다. 그러니까 사설을 쓰지 않고 쉬더라도 정신은 딴 데 팔지 말고 진실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인 것 같다.
언론환경이 급변하고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미디어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기자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야 한다. 그에 더해 이제는 기자도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기자라고 하면 뭔가 꺼리고 의심하거나 무식하다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거칠고 버릇없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불식되지 않은 탓일 것이다.
늘 마감시각에 쫓기며 다른 기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밤낮없이 뛰다보면 거칠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40년 가까이 기자 일을 해온 사람으로서 그런 점은 참 안타깝다. 모두가 스스로 교양 있고 깊이 있는 전문인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언론인으로서 품위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한 언론인이 이런 퀴즈를 냈다. “기자정신의 반대말이 뭔지 아십니까?”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가 스스로 알려주기를 “그건 맨정신입니다.”라고 했다. 와하고 웃음이 터졌다. 진짜 그럴듯하지? 맨정신으로는 그런 식으로 살기 어렵다는 뜻을 담은 농담일 것이다.
그러면 기자정신의 반대말만 맨정신일까? 교사정신 군인정신 상인정신 장인정신 판사정신검찰정신 경찰정신 의사정신 기사정신, 이런 모든 정신의 반대말은 다 맨정신일 수 있다. 모든 전문직은 열정과 몰입으로 충분한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깨어 있고 항상 냉정하고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역설이 이 농담에 들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냥 웃고 말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맨정신’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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