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15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을 시작하며 이례적으로 세계 언론의 보도를 언급했다. 부채상한 조정을 놓고 대립하는 미국 정치권에 대한 세계의 반응이었다. 그가 예로 든 3개국 언론은 미국을 향해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다"(한국) 거나 "무법과 불안이 세계 최강국 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스페인)거나 "달러화 패권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영국)고 비판했다. 국무부 대변인이 미국에 불리한 기사를 소개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사키 대변인의 해외 보도 언급이 미국의 반성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중단돼야 한다는 논거들"이라고 말해 미국 정치권을 겨냥한 발언임을 인정했다.
세계의 우려에 둔감한 모습을 보이기는 유력지 뉴욕타임스(NYT)도 마찬가지였다. NYT는 이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미국 비판에 "너나 잘 하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신화통신은 백악관과 의회만 오락가락하는 미국 정치권의 무능을 질타하며 "탈미국화한 세계 건설을 고려할 적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보기관들의 광범위한 감청 등 비윤리적 행위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도덕 우위론을 비교하는 식으로 미국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NYT는 이에 "미국 국채 1조3,000억달러를 보유한 최대 채권국인 중국의 우려는 이해할만하다"면서도 "중국으로서는 비통해 하며 스스로 손을 비트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느냐"고 비꼬았다. 또 "중국이 손해를 감수하며 미국 국채를 팔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입으로는 달러 위기를 거론하고도 실제로는 달러 표시 채권을 사들이는 중국의 이중성을 꾸짖었다. NYT는 니콜라스 라르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이 미국 국채를 위험자산이라고 평가한다면 외환 보유고 늘리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위적 위안화 평가절하로 무역흑자를 낸 뒤 달러 표시 채권을 사들이는 행태를 그만두면 달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훈계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러나 "다른 나라 경제 위기에 부끄럼 없이 혹독한 주문을 해온 미국이 스스로 그런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1990년대 아시아 경제위기 때 감독관이 된 미국은 한국에 예산 삭감과 은행 폐쇄라는 쓴 처방을 내렸고 인도네시아에는 정실 자본주의 청산을 요구했다. 멕시코와 다른 남미국가들도 채무 구제를 대가로 금융시장 개방 등 미국식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했다. 하지만 부채상한 조정에 난항을 겪으며 다른 나라마저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미국은 달러 패권을 앞세워 스스로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WP는 다른 나라에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면 아마 디폴트에 빠지거나 혹독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티븐 킹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기축통화를 보유한 나라가 수입 이상으로 쓴다면 다른 나라에 (통화 패권의) 바통을 넘겨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달러 패권이 스페인의 은화, 영국 파운드화의 전철을 밟으며 미국 역시 대가를 치를 것이란 경고였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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