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경찰서 여성청소년과는 지난달 초 성폭력 전담수사팀을 꾸리며 황당한 소동을 겪었다. 경찰청 지시로 일단 팀을 구성했지만 별도로 지원된 예산이 없어 외상으로 책상과 의자 등 집기를 사다 부랴부랴 사무실 형태를 만들었다.
다음 문제는 성폭력 수사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 확보였다. 팀장 자리는 기존 강력팀장 중 한 명으로 채웠지만 3~6명에 달하는 팀원들을 빼올 데가 없었다. 고민 끝에 신입 순경을 지구대나 파출소에 보내는 대신 수사 경험이 있는 이들을 끌어와 구색을 맞췄다.
겨우 시작은 했지만 성폭력 전담팀은 한달 넘게 전용 수사차량이 배차되지 않아 형사과 차량 중 쓰지 않는 차를 빌려 타고 출동해야 했다. 수사비 역시 책정되지 않아 여성청소년과 수사비를 쪼개 썼다. 수사비는 이번 주 들어서야 뒤늦게 지급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 경찰서뿐 아니라 성폭력 전담팀이 설치된 전국 경찰서라면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B경찰서 성폭력전담팀 관계자는 "수사비 언제 주냐고 서울경찰청에 계속 문의하니 곧 4달치를 준다더라"며 "강력팀 수사비의 3분의 1밖에 안되지만 그나마 숨통은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4대 사회악 척결 공약 이행을 위해 지난달 5일 전국 52개 경찰서에서 출범한 성폭력 전담수사팀이 체계적인 준비 없이 간판부터 다는 데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성폭력 전담팀은 기존 형사과와 여성청소년과로 나뉜 성폭력 수사체계를 여성청소년과로 일원화하기 위해 설치됐다. 24시간 운영되며 사건 발생부터 수사, 재판 단계까지 성폭력 사건 전반을 담당하고 피해자 보호 및 지원까지 맡는다.
올해 5월부터 3개월간 시범운영된 서울 관악경찰서를 시작으로, 서울(19개) 경기(10개) 부산(4개) 인천(4개) 대구(3개) 등 성폭력 사건이 많은 전국 52개 경찰서에 우선 꾸려졌다. 배치된 인력은 총 294명으로, 평균 경찰 경력 13년의 수사경력자가 전체의 84%를 차지한다. 이달 2일까지 이들 전담팀은 모두 891건의 성폭력 사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하반기에 급히 출범하느라 올해 경찰 예산안에는 성폭력 전담팀 예산이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 경찰청은 급한 대로 다른 부서 예산을 끌어와 수사비는 맞췄지만 비품 구입비 등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4대 사회악 척결 공약 때문에 치밀한 준비 없이 성폭력 전담팀 설치를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C경찰서 한 간부는 "제도가 신설되면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번처럼 제대로 된 대책 없이 시행한 것은 처음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새로운 조직은 안정화까지 시간이 걸리고, 예산은 행정 절차상의 문제라 곧 해결될 것"이라며 "성폭력 전담팀은 성폭력 근절을 위해 4대 사회악 척결 공약 추진 이전부터 경찰이 자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만든 팀"이라고 해명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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