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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0월 17일] 우리가 무슨 '공공의 적'입니까?

입력
2013.10.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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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슨 공공의 적입니까?"

한 공기업 직원은 항변처럼 씁쓸하게 내뱉었다. 몇 년 전 방만 경영이니,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니 하며 공공기관들이 사방에서 욕을 먹을 때였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그 때 상황이 고스란히 되풀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앞다퉈 질타의 목소리를 높이고, 그 소식을 전하는 신문과 방송의 보도는 공분으로 폭발할 듯 하다.

여름 전력난과 자회사 원전비리로 홍역을 치른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에 3조7,8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사장은 연봉 외에 보너스로만 1억3,600만원을 챙겼고, 직원들도 1인당 700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적자 속에서 보너스 잔치를 벌인 공기업이 100개가 넘는다.

그뿐 아니다. 산업부와 국토부 산하 30여개 공기업들은 정부지침까지 어겨가며 최근 3년간 퇴직 임직원들에게 정규 퇴직금 외에 무려 300억원이 넘는 성과퇴직금을 따로 얹어 줬다. 거기에 더해 어디는 퇴직자 1인당 200만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뿌렸고, 다른 곳은 순금 1냥(200만원 상당)짜리 행운의 열쇠를 나눠주기도 했다.

재직사원 복지혜택도 '신의 직장'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랄 수 없을 정도다. 한수원 등 13개 전력 유관 공기업은 최근 3년 간 1,600억원어치의 복지포인트를 나눠 가졌고, 규정을 어기며 손자에게까지 지급한 무상학자금 지원액이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에서만 1,300억원에 육박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사람들 정말 '공공의 적'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희한한 건 사회적 공분이 매년 하늘을 찔러도 정작 공공기관들은 꿈쩍도 않는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재정경제원이 개혁 차원의 공기업 경영 개선방안을 낸 게 1993년이다. 그 때부터 쳐도 20년 동안 공공기관들은 해마다 묵사발이 될 정도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음에도 모럴해저드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왜? 너희들이 아무리 욕해도 우리로선 그럴 만 하다는 항변의 여지 때문이다. 그 항변이 바로 "우리가 무슨 공공의 적입니까?"라는 반문에 함축돼 있다.

올 7월 현재 우리나라 공공기관은 공기업 30개를 포함해 총 295개다. 올해 총예산은 574조7,000억원으로 정부예산 349조원의 1.7배에 달한다. 고용인원은 전체 행정공무원 수의 40%에 해당하는 25만4,000명이다. 이 거대한 경제집단이 1개 기관당 1조6,000억원, 총 493조4,000억원의 부채를 짊어진 부실의 늪에 빠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공공기관 어디도 부실의 책임을 자인하지 않는다. 한전은 정부가 본전도 안 되는 전기료를 책정하기 때문에 만성적자를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정부의 공공주택사업 비용을 공사가 떠맡았기 때문에 막대한 부채가 쌓였다며 불만이다. 얼마 전 도로공사가 적자를 줄이랬더니 장애인과 경차의 고속도로 통행료를 올리겠다고 나선 것도 어찌 보면 가격 결정권을 쥔 정부에 부실 책임이 있다는 나름의 야유일지 모른다.

물론 대부분 독과점 사업인 공기업들이 가격 결정권만 주면 얼마든지 흑자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공익적 성격의 서비스와 가격관리야 말로 공기업 체제의 존속 이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든 정치권이든 이런 왜곡된 인식을 뜯어고칠 입장이 못 된다는 데 있다. 공공기관장 자리의 대부분을 꿰차고 앉는 사람들이 유관 부처 간부 출신이거나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질적 구조 때문에 공공기관은 누구나 만만하게 욕을 해대지만, 누구도 그 목에 방울을 달 수 없는 거대하고 게으른 고양이가 된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방안'을 새로 마련해 발표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최근 "공공기관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에서는 공공기관장 인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대선 공신들을 챙겨달라고 아우성이란다. 줄줄이 이어질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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