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독일 총선에서 3선 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자국 내 자동차업체인 BMW한테서 거액 기부금을 받고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을 강화하는 유럽연합(EU) 규제안을 백지화시켰다는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엄마 총리'란 애칭으로 사랑 받았던 그가 이젠 '자동차 총리'라는 오명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현지시간) 독일 하원이 공개한 자료를 인용해 BMW의 최대 주주인 요한나 크반트와 장녀 주자네 클라텐, 장남 슈테판 크반트가 9일 69만유로(약 9억9,000만원)를 메르켈이 이끄는 기독교민주당(CDU)에 기부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올해 독일 정당이 받은 기부금 중 최대 규모다.
문제는 기민당이 BMW한테서 기부금을 받은 시점이 EU에서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규제안이 논의되기 바로 일주일 전쯤이라는 것이다. 지난 14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EU 회원국 환경장관 회의는 유럽 내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량 허용 기준을 2015년 1㎞ 당 135g에서 2020년까지 95g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독일은 당시 환경장관 회의에서 자국 경제의 핵심 축인 자동차 산업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이 같은 내용의 규제안을 폐지하는 것과 함께 규제 시행시기도 2015년에서 2024년으로 미뤄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결국 EU 환경장관들은 규제안을 폐지하고 몇 주 안에 다른 대체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기민당은 "BMW 일가는 우리 당이 여당일 때나 야당일 때나 상관없이 여러 해 동안 사적으로 지원해왔다"며 (규제안 폐기와) 기부금은 어떠한 정치적 결정과도 관계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독일의 정치자금을 감시하는 비영리단체인 로비컨트롤은 기부금의 주체와 규모, 기부 시기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규제안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BMW은 EU의 기존 배기가스 규제안이 실행될 경우 가장 타격을 입게 되는 업체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의 자동차업체는 중ㆍ소형차를 주로 생산하지만, BMW를 비롯한 독일 자동차업체는 배기가스 배출량이 많은 중ㆍ대형차가 주력 차종이기 때문이다.
독일 경제전문지 한델스블라트는 메르켈을 '자동차 총리'라 비난하며 그가 최근 4년 간 65번에 걸쳐 독일 자동차 업계 고위 관계자들을 총리실로 초청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기부금과 정치적 결정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건 뻔뻔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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