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은 딱 둘이다. 광고 문구처럼 '외계인도, 우주전쟁도 없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다 뜻하지 않게 사고에 휘말린 우주인들의 역경 극복기가 광대무변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줄거리만 전한다면 너무나 단순한 이 영화, 특별하다. 아니 경이롭다. 별스럽지 않은 듯 세상의 이치를 담고 삶의 역설(逆說)을 그린다. 상영시간 90분 내내 심장을 누르고 눈을 찌른다. 적지 않은 관객이 공상과학영화를 보다 눈물을 흘리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 '그래비티'와 마주하면 영화와 함께 묶이기 마련인 '본다'라는 동사가 궁색해진다. 관객들은 영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우주에서 목숨을 걸고 허우적대는 우주인이 된다. 단연코 올해 할리우드 영화의 최고작이다.
주인공은 스톤(산드라 불록)과 매트(조지 클루니)다. 박사 학위를 보유한 스톤은 초보 우주인이고 매트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 중인 백전노장이다. 한가롭게 아름다운 '푸른 별'을 내려다보며 놀듯이 업무를 처리하던 두 사람은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와 맞닥뜨리게 된다. 스톤과 매트가 탑승했던 우주선은 잔해들의 공격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고 두 사람은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다. 까마득히 먼 별의 빛보다 더 어두운 희망을 지닌 채 둘(정확히는 스톤)은 지구로의 귀환을 시도한다.
그 과정은 잔인하다. 강 건너 산이오, 산 넘어 강이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부릴 수 없는 무중력 상태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또 위기를 맞는 두 사람의 모습은 관객의 심장을 쥐락펴락한다. 때론 탄성에, 때론 탄식에 입이 벌어진다. 특히 도입부 지구를 뒤로 두고 작업하는 우주인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다 우주의 풍광을 살핀 뒤 스톤의 헬멧 안으로 들어가 스톤의 시선으로 우주를 다시 보는 20분 동안의 롱테이크(컷이 바뀌지 않고 한 동작으로 계속 이어지는 영화기법)는 압권이다.
단순한 모험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이 영화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비티'(중력ㆍGravity)라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스톤은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과거를 지녔다. 아마도 스톤은 중력처럼 그를 과거로 끌어당기는 마음의 상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운전만 하다'가 우주까지 다다랐을 것이다. 정작 스톤은 우주에서 역경을 맞이하며 그를 괴롭혔던 중력의 실체를 직시하게 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싯구처럼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그는 살기로 작정한다. 영화는 스톤의 사연을 통해 삶이라는 중력이 작용하는 땅 위에 두 발 딱 붙여 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중력의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우주야말로 자유롭지 못한 공간이라고, 삶의 아픔마저 껴안아야만 진정한 삶이라고 속삭인다. 이는 인류 전체를 향한 경구로도 들린다. 우주 탐험과 우주 개발 등의 허망에 매몰되지 말고 당신들의 진정한 터전인 지구를 되돌아보라고.
'이 투 마마'와 '위대한 유산'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등을 연출한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작품이다. 그는 영화가 너무 밋밋할 수 있다며 미사일 등을 등장시켜 오락적 요소를 극대화하라는 제작사의 압박을 이겨내고 이 걸작을 완성했다(제임스 카메론은 이 영화를 보고 "시대를 뛰어넘은 미친 짓"이라 했다고 한다). 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