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누군가 그를 '연기 괴물'이라 칭했다.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본 관객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영화 속 그는 김윤식 김성균 조진웅 등 연기로 다져진 선배 배우들에게 한치도 밀리지 않는다. 그 누군가는 그와 대면하면 "16세 고등학생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15일 오후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굵고 낮은 목소리로 빈틈없이 조리있게 답변하는 그에게선 30대의 성숙함마저 느껴졌다. 어른스러운 행동과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는 뜨거운 피로 데워진 얼굴 위 붉은 기운을 감추진 못했다.
여진구가 주연한 '화이'는 15일까지 130만9,534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관람했다. 예상을 깬 흥행 질주다. 친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그리고 자신을 길러준 양아버지들까지 처단해야 하는 소년 화이(여진구)의 잔인한 사연이 과연 관객몰이 나설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넘어선 것이다. 여진구를 향한 여성관객들의 열렬한 지지가 흥행의 밑바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작 여진구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봤다는 게 거짓말 같아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표만 팔리고 사람들은 안 본 게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도 말했다. 고교생다운 반응이라 생각할 찰나 허를 찔렸다.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요. 화이는 저 혼자 만든 인물이 아니에요. 감독님, 스태프들, 선배 배우 등 모두의 도움으로 만들어졌거든요. 저만 칭찬 받고 그분들의 역할은 가려지는 듯해 죄송해요."
여진구에겐 큰 누나 뻘 되는 여성관객들이 '화이'를 본 뒤 그가 진구로 개명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30대 배우 진구와 이름이 같아지면 거리낌 없이 그를 '오빠'라 부를 수 있다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이유에서다. 여진구의 웃음 섞인 여유로운 반응이 더 걸작이다. "저야 너무 감사하죠. (나이 많은 분들이) 오빠라 불러도 저는 괜찮습니다. 그분들이 양심에 걸리지만 않으면요."
여진구는 서울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학교 수업도 거의 빠지지 않고 방과 후 대부분의 시간은 공부를 한다. 친구들과도 굉장히 친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는데 고교 들어와선 중하위권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할 땐 영락없는 고교생이다. 2005년 '새드 무비'로 연기를 시작해 8년 동안 여의도와 충무로를 오가며 연기 이력을 쌓은 배우치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듯했다. 학업 계획도 의외였다. 그는 "대학 갈 때 굳이 연극영화과를 지원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이미 연기 공부를 하고 있으니 심리학과 등 다른 식으로 연기에 도움이 될 전공을 택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학업과 이성 등 갖은 고민들이 질풍노도처럼 몰려오는 시기에 놓인 그는 "연기가 최대의 고민"이라고 했다. "너무 연기에만 집중해 학창시절의 추억을 놓칠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라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온통 연기 생각뿐인 이 10대는 "8년 동안 연기를 하는 동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한적이 없다"고도 했다. "연기는 할 때마다 새로워서 질릴 틈이 없었다"는 게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고 좋게 평가할 때, 촬영 현장에서 한 인물을 만들어내고 촬영을 마칠 때의 성취감은 정말 대단하다"고도 했다.
"남들보다 일찍 연기를 시작해서 너무 좋아요. 쉴 때는 좋아하는 여러 선배 배우들의 영화나 드라마를 챙겨보며 연기를 배우려고 노력해요. 영화나 드라마를 택할 땐 경험 쌓기에 도움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삼아요. 여태껏 해보지 못한 장르나 내용, 인물을 택하려고 합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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