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3년 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회사원 윤명준(39ㆍ가명)씨는 재혼을 위해 몇 달 전 결혼정보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커플매니저로부터 마음에 드는 여성들을 소개받고 몇 차례 만남도 가졌지만 재혼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소한 의견 차이에도 '결혼하면 분명히 싸울 텐데' '결혼해놓고 계속 안 맞으면 어쩌나'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윤씨는 "초혼 때처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결혼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며 "같이 살아보고 결정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이혼율 증가로 재혼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한 차례 결혼에 실패한 '돌싱'들을 사로잡기 위한 결혼정보회사의 전략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계약 재혼'이다. 실제로 국내 한 유명 결혼정보업체가 이달 8일 내놓은 이 서비스는 소개 받은 이성과 교제한 뒤 재혼을 원할 경우 커플매니저의 중개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일정 기간 동거하면서 결혼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살아보고 재혼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함께 살 기간은 물론 경제력 분담, 자녀 양육 등 가정문제와 성적 취향까지 커플매니저와 조정해 계약을 하지만 생각했던 결혼생활과 다를 경우 언제든지 계약을 끝낼 수 있다. 약 100만원의 비용이 드는 이 서비스는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40대 전후의 돌싱 남녀 50여 명이 신청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다시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재혼을 원하는 수 많은 돌싱들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며 "처음부터 결혼이란 법적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 원하는 조건을 공유하면서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취지로 나온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계약결혼'이 그렇듯 계약재혼 역시 만남이나 결혼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다른 결혼정보업체에서 재혼 대상을 찾고 있는 회사원 이미정(40ㆍ가명)씨는 "재혼이다 보니 배우자 선택에 좀 더 신중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계약조건을 걸고 동거부터 하는 건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혼인신고 같은 정식 결혼절차를 밟지 않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할 경우 오히려 갈등이 더 커진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해 상담자료를 분석한 결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가정의 갈등상담 비율은 34.9%로 일반 재혼가정의 상담 비율(16.7%)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상담소 관계자는 "다시 이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사는 부부가 많다"며 "이런 사실혼 관계는 법적 혼인상태보다 아무래도 서로 간의 결속력이 낮을 수밖에 없어 관계가 악화될 소지가 더 크다"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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