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중국 은행들의 런던 지점 개설 편의를 봐주고 원자력 시장도 중국 기업에게 개방하는 한편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기준도 완화했다. 이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난 뒤 살얼음판을 걸어 온 양국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영국의 구애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모양새로 달라진 위상을 과시했다.
마카이(馬凱)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15일 베이징(北京)에서 제5차 중영경제금융대화를 가졌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이번 대화는 당초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으나 연기된 후 올해 개최 여부가 주목됐다. 마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중국은 영국 기업들이 상하이(上海)자유무역시험구에 적극 투자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영국도 중국 기업들이 투자하는 데에 있어 편의를 제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 은행들이 런던에 지점을 내는 일을 잘 처리해 주길 기대하며, 더 많은 영국 은행들이 위안화 결제를 해줄 것을 원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오스본 장관은 "영국은 편의를 제공할 것이며, 런던이 중국 금융기관의 해외 투자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런던의 위안화 거래 시장도 점차 더 커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영국은 그 동안 중국 은행들에 대해 중국 법을 따르는 지점 대신 영국 법을 준수해야 하는 현지 법인만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위안화 국제 거래(중국 대륙과 홍콩 제외)에서 런던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양국의 화해로 위안화의 국제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에드워드 데이비 영국 에너지·기후변화 장관도 이날 차이나데일리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경제체제"라며 "중국 기업들이 우리의 에너지 시장에 들어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광허(廣核)집단이 영국 남서부 힌클리 포인트 지역에 계획중인 원자력 발전소 건설 참여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사실상 중국 기업에 원전 시장을 개방한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은 이에 앞서 14일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비자 규정 완화 계획도 발표했다. 별도의 비자를 받아야 하는 불편 때문에 유럽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이 영국을 외면한다는 지적에 따라 비자 신청 양식을 유럽과 동일하게 바꾸기로 한 것이다.
영국의 이런 변화에 중국도 화답하고 있다. 베이징젠궁(北京建工) 유한책임공사(BCEG)는 14일 맨체스터 공항 상업지구 개발에 6억5,000만 파운드(약 1조1,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내놨다. 중룽(中融)그룹도 지난 4일 5억파운드(약 8,800억원)를 투입, 런던 남부에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 '크리스털 팰리스'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핑안(平安)보험도 최근 런던 금융가의 로이즈 보험 본사 빌딩을 2억6,000만 파운드(약 4,500억원)에 매입했다. 중국투자공사(CIC)와 화웨이(華爲)도 영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해 종교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룬 이에게 수여하는 템플턴상을 받기 위해 런던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를 면담했다. 이에 중국은 티베트 분리 독립을 외치는 달라이 라마를 만난 것은 내정간섭이라면서 항의했고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영국이 이를 거부하며 양국의 관계는 이후 고위층 교류가 전면 중단되는 등 냉각기가 이어졌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