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화두 시대다. 어느 새 정치권을 비롯해 묵직한 사회이슈로 안착됐다. 복지수급을 둘러싼 대중적 관심과 이해조정이 그만큼 증폭된 결과일 터다. 작년 대선에선 '보편복지' 슬로건이 정권까지 안겨줬다. 복지이슈가 권력전쟁의 최대쟁점이 된 것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복지는 선진국의 해묵은 정책난제다. 일본이 내년 4월 아베노믹스의 회복불씨를 끌지도 모를 소비증세(5%→8%)에 나선 것도 비어가는 복지곳간을 채우기 위함이다. 미국이 건강보험개혁법(Obamacare)에 맞서 치킨게임 중인 것도 그게 정치철학과 연결된 복지이슈인 까닭이다.
복지수요는 늘 수밖에 없다. 고도성장이 끝나고 감축성장으로 접어든 지금 한정된 시장자원을 쥐지 못한 빈곤가구의 증가세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해당수요를 못 맞추는 복지공급이다. 재원부족이 그렇다. 돈은 없고 달라는 곳은 많으니 선점경쟁은 치열하다. 사회갈등ㆍ조정비용은 더 높아진다. 세대갈등으로 치달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방안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그 예다. 아쉽게도 재원부족은 단기간에 채워지지 않는다. 복지공급을 줄이거나 성장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다 어렵다. 와중에 복지수요는 하루가 다르다. 배 골는 아이들만 수십만 명인 게 엄연한 오늘이다. 현명한 재배분이 요구되는 이유다.
쓰고 싶어도 돈이 없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과연 그럴까. 반은 틀렸고 반은 맞다.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커버하자면 복지재원의 절대량이 부족한 건 맞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미래수요를 감안하면 더 그렇다. 특히 저성장ㆍ고령화 시대의 양극화는 향후 미끄럼틀 아래의 복지수요를 늘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이에 걸맞은 지속 가능한 사회유지를 위해서도 재정확충은 필수다. 한편 틀린 절반은 제대로 썼느냐의 혐의로 귀결된다. 적은 돈을 탓하기 전에 제대로 썼는지 돌아보자는 얘기다. 적은 돈일지언정 적재적소에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집행되면 적어도 지금보다 사각지대ㆍ소외계층이 줄어들 것은 명약관화다. 이는 예산타령과 전혀 다른 문제다.
복지공급에는 분배허점과 지출구멍이 적잖다. 모세혈관까지 닿아야 할 복지공급의 전달체계에 각종 체증ㆍ누수가 확인된다. 업무ㆍ예산을 놓지 않으려는 관료ㆍ부처주의 탓에 개별 부처마다 중복사업이 수두룩하다. 복잡한 이해관계까지 개입하기 일쑤다. 즉 '국민'보다 '조직'이 우선이다. 정책효율의 반감이다. 선거마다 인기영합적인 정책양산도 문제다. 복지수요의 다각ㆍ치밀ㆍ장기적인 정책도입은 기대하기 어렵다. 의외로 형식적인 중간조직도 많다. 복지이슈를 실행하는 산하단체만 300개에 육박한다. 다만 이 모든 전달체계의 최종집행은 대민 창구다. 과중업무ㆍ상시과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달체계에서 기생(?)하는 일부 민간조직의 폐단도 뺄 수 없다. 강고하게 쌓은 장벽으로 도덕적 해이와 부정혐의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해결책은 없을까. 대전제는 "정책은 있는데 기능은 의심스럽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없는 걸 새로 내놓기보다 있는 것만이라도 잘하자는 의미다. 급한 건 한정재원을 잘 배분하고 전달체계의 통일성을 높이는 총괄타워의 마련이다. 그래야 부처조직ㆍ관료이념을 뛰어넘는 조율기능ㆍ균형감각의 발휘가 가능해진다. 산하단체의 효율제고는 일본에서 실시된 적 있는 공공사업 예산재분배(仕分け)처럼 전체적인 재조정이 좋다. 방만ㆍ중복여부의 체크를 위해서다.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공분을 사는 지금 보신주의의 배불리기를 막기 위해서도 좋다. 민간폐단은 세력ㆍ독점화를 위한 견제세력이 대안이다. 복지재원의 독점적 탈취를 막는데 제3의 민간단위 공급주체를 발굴해 경쟁구도를 높이는 식이다. 섬세한 모니터링을 통한 감시ㆍ통제는 물론이다.
복지는 뭘 해도 욕먹는 정책이라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넘기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기엔 우리의 갈 길이 너무 멀고 또 위험하다. 더 늦기 전에 '개혁'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 개혁은 말 많은 예산문제에서도 비켜선다. 뒤늦게 우왕좌왕해봐야 소용없다. 눈 깜짝할 새 복지예산만 벌써 100조원(2014년)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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