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사망한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옷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인 폴로늄-210의 흔적이 발견돼 그의 독살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스위스 로잔대 방사능연구소 조사팀이 14일 발행된 의학전문지 랜싯에 아라파트 전 수반의 부인이 제공한 그의 속옷과 모자, 칫솔 등 유품 샘플 38개와 10년간 다락에 보관하고 있던 비교 샘플 37개를 비교 조사해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폴로늄은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수상한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부부가 1898년 파리 연구실에서 처음 발견한 방사선 물질로 다량 흡수되면 인체 조직과 장기에 치명적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폴로늄은 퀴리 부부가 당시 러시아 등의 지배를 받는 조국 폴란드를 기려 지은 이름이다.
조사팀은 이날 보고서에서 군 병원에 입원했던 당시 아라파트의 진료기록에 있는 메스꺼움, 구토, 피로, 복통 등의 증상이 폴로늄-210 중독에 따른 것임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조사팀은 "아라파트의 옷에 묻어 있는 그의 혈액과 소변 등에서 비교샘플 보다 훨씬 높은 수치의 폴로늄-210이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조사팀은 방사선 중독 현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탈모, 골수 활동 저하가 아라파트에게서 확인되지 않았다며 그의 사망 직후 부검이 실시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아라파트는 75세이던 2004년 11월 프랑스 파리의 군 병원에 입원한 후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한 달 만에 사망했다. 당시 아라파트의 부인이 부검을 원치 않아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그의 급작스런 사망을 두고 이스라엘에 의한 독살설, 에이즈(AIDS) 보균설 등 수많은 음모론이 제기돼왔다.
실제 팔레스타인 정부는 지난해 11월 아라파트의 독살 여부를 밝히기 위해 그의 무덤을 열어 유해에서 표본을 채취했고, 현재 스위스와 러시아, 프랑스 등 3개국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이 표본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결과로 아라파트의 독살 가능성에 힘이 실리면서 팔레스타인 정부가 이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ICC)에 제소할 것인지 주목된다. 아라파트 사망에 대한 팔레스타인 조사위원회 위원장인 타우피크 티라위는 지난해 "아라파트가 독살됐다는 증거가 발견되면 ICC로 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