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 종로 정독도서관 앞 공중전화의 지난달 매출은 0원이었다. 한 달 동안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다는 뜻. 이처럼 월간 이용자가 한 명도 없는 공중전화는 전국적으로 약 200개에 이른다.
장기간 이용자가 없는 공중전화는 철거된다. 매달 500개 정도의 공중전화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전국민 휴대폰 시대로 접어들면서 공중전화는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갈수록 이용자가 줄어, 매출은 커녕 손실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철거할 수만은 없다. 아직 휴대폰이 없는 국민도 있을 테고, 설령 휴대폰이 100% 보급된다 해도 비상시 용도는 존재하기 때문에 공중전화는 손익과 관계없이 유지돼야 하는 '보편적 서비스'다. 그렇다 보니 정부와 공중전화 운영손실을 떠안아야 할 통신업체들의 고민이 깊다.
14일 미래창조과학부가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통신업체들이 떠맡은 공중전화 운영손실 분담금은 총 1,701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쉽게 말해 5년 간 1,701억 원의 적자를 봤다는 뜻이다.
공중전화는 KT자회사인 KT링커스에서 운영하지만 보편적 서비스여서 손실이 발생하면 연 매출 50억 원 이상인 15개 통신업체들이 분담한다. KT는 물론, 직접 운영하지 않아도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이 함께 떠안는 구조다.
공중전화는 1990년대 후반까지 전국에 15만 대 이상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 보급에 비례해 이용자가 급감, 지난해 말 현재 7만6,783대로 줄었다. 매달 500대 가량 사라지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에 6만대 선으로 내려갈 전망이다.
KT 관계자는 "사람이 붐비는 곳일수록 공중전화는 이용률이 저조하다. 대부분 휴대폰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수요가 많을 것 같은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영안실이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등도 통화건수가 월 10통 미만"이라고 전했다. 썰렁한 흉물처럼 방치된 부스도 많다.
하지만 의무서비스이기 때문에 이용률이 낮다고 공중전화를 없앨 수는 없다. 실제로 극빈층이나 휴가 나온 군인, 외국인 등은 여전히 한 통(3분) 당 70원을 내는 공중전화를 찾는다.
공중전화도 나름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첨단 공중전화도 등장했고, 현금인출기나 자동제세동기 등 다른 기기들과 함께 설치하는 멀티부스 형태로도 운영된다. 전북 완주군에선 공중전화 부스에 책을 비치해 무인독서대처럼 꾸몄고, 울산시는 공중전화부스를 옥외광고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래도 쇠락의 대세로 접어든 공중전화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른 나라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미국은 결국 공중전화를 보편적 업무에서 제외해 통신업체 수익사업으로 전환했고, 일본은 대부분 지하철 및 철도역사에서 공중전화를 철거했다. 하지만 수익사업화할 경우 요금이 오르고, 수익이 나는 곳에만 설치하는 문제가 생겨 우리 정서상 택하기 힘든 대안이다. 민병주 의원은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나 휴대폰 보급비율 등을 고려해 지역별로 공중전화를 차등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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