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립대를 포함한 70개 대학이 학생들의 성적증명서를 취업용과 열람용으로 구분해 발급해 온 것으로 교육부 국감자료에서 드러났다. 열람용에는 모든 학사과정 취득성적을 표기하는 반면 취업용(제출용)에는 F학점을 받은 과목은 빼거나 재수강 여부를 기록하지 않았다. 일부 대학은 학칙이나 내규로 '이중 성적표'를 만들도록 규정하기까지 했다. 대학들이 아예 내놓고 학생 성적을 조작한 셈이다. 교육부가 지난 4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대학 졸업생 가운데 평균 평점 B학점 이상이 무려 90%나 됐다. 재학생의 절반 이상에게 A학점을 준 대학들도 서울대와 포항공대를 비롯해 상당수였다.
대학들의 취업용 성적표 발급과 학점 부풀리기는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대학 당국과 교수들의 빗나간 온정주의라는 측면도 있지만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많이 받으려는 얄팍한 속셈도 한몫하고 있다. 재정지원 대상 대학을 고를 때 취업률을 주요 지표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학들의 편법이 학점 불신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는 데 있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지원자들의 학점을 신뢰하지 않는 현상이 이미 확산되고 있다. 기업들이 학점을 믿지 못하니 다른 '스펙'에 의존하게 되고 학생들은 그에 맞춰 새로운 '스펙 쌓기'에 나서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휴학을 해서라도 해외연수를 다녀오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학점 불신이 추가로 빚은 사회적 비용이라 할 수 있다.
대학들은 엄정한 학사관리로 신뢰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학들이 고교 내신 부풀리기를 믿지 못하겠다며 반영률을 낮추면서 정작 스스로 학점을 '퍼주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일부 교양과목에서만 시행 중인 상대평가제를 확대하고 학점 세탁 수단으로 악용되는 재수강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학을 관리ㆍ감독하는 교육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대학들의 공공연한 이중 성적표 발급을 그 동안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직무태만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학점 퍼주기 규제 등 보다 적극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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