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양증권이 투기등급의 계열사 회사채 및 기업어음을 판매함에 따라 피해자가 많이 발생한 바 있다. 이에 더하여 동양그룹 대부업체의 계열사 대출 및 효성그룹의 차명대출 등이 드러나면서 금산분리의 강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금융계열사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대규모 기업집단들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우리 현실에서 금융계열사들이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이나 총수일가의 지배권 강화 등에 활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노력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다만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금산분리가 이와 같은 역할을 넘어 우리 금융산업 발전을 촉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인 대규모 기업집단들은 대부분 내부자본시장(internal capital market)을 구축 운영하고 있다. 즉 대규모 기업집단 내에 존재하는 소규모 자본시장에서 각 계열사 별로 자금의 배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계열사 가운데 금융회사가 있으면 이 금융계열사가 내부자본시장의 주요 자금원 중 하나가 되는 것은 당연하겠다.
그런데 내부자본시장의 효율성 여부는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비효율성의 온상이 될 수도 있지만 기업집단 안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그리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인 투자를 보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내부자본시장의 부정적 영향과 긍정적 영향에 대하여 이론 및 실증 분석의 두 측면에서 모두 엇갈린 주장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관련하여 기업집단의 내부자본시장이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주장도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해당 기업집단의 과감한 투자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 이런 주장을 반박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과거의 경제발전 단계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했던 장치들이 경제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진 오늘날에도 잘 작동할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동양이나 효성의 사례에서처럼 내부자본시장의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질 수도 있다.
내부자본시장 자체의 효율성보다 중요한 이슈는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비록 기업집단이 내부자본시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 전체적으로 효율성이 낮아질 수 있다. 그 주요한 이유로 기업집단에 속하지 않은 우수한 기업이 자금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더욱이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은 외부자본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외부자본시장에서는 투자자의 자금이 모여 기업들로 흘러가는데 자금의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비대칭 정보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수의 산업자본 기업집단들이 외부자본시장에서 활동하는 금융회사를 계열사로 가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의 자본시장에서는 기업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생산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기업집단 계열 금융사들은 자기 계열사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그리고 경쟁관계의 기업에 대해서는 불리하게 왜곡된 정보를 생산할 유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이러한 유인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설사 산업자본 계열 증권회사들이 정직하게 정보를 생산하더라도 이를 신뢰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자본시장의 투자자 기반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자본시장 자체의 발전이 저해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은 금융시장이나 금융산업의 발전에 질곡이 되고 있으며 금산분리의 강화는 오히려 금융산업 발전의 주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 "우리나라에는 세계 굴지의 초우량 제조업체들이 많이 있는데 왜 금융산업에는 그와 같은 초우량 글로벌회사가 없을까?" 하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그 해답은 그러한 세계 굴지의 초우량 제조업체들이 금융업에 많이 진출한 것에서 찾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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