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소프트웨어 쪽에서 오류가 한 건도 없었습니다. 기분 좋은 주말을 보내도 되겠는데요." "그래도 작은 오류(버그) 하나도 큰 파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구."
11일 경기 안산 아남전자 연구실. 한문호 수석연구원(부장)과 차영훈 대리가 '소프트웨어 일기장'을 들여다 보며 어제의 성적표를 체크하고 있다. 곁에 있던 이들의 '과외교사' 인 소프트트웨어 전문회사 MDS테크놀러지의 이은주 과장은 "소프트웨어만 놓고 보면 웬만한 대기업 이상의 시스템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한 부장은 "마란츠, 야마하, 데논, 하만카든 등 글로벌 오디오 회사들은 이미 주문 때부터 어떤 소프트웨어를 쓰는지 또 개발과 평가 과정까지도 꼼꼼하게 체크한다"며 "오디오 환경도 블루투스 등을 기반으로 한 IT 중심으로 가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이를 표준화해서 오류를 줄이는 것이 필수 과제"라고 설명했다.
잊혀진 '왕년의 TV왕국' 아남전자가 소프트웨어로 새 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있다.
1970~80년대만해도 아남전자는 삼성전자 LG전자(당시 금성사)가 부러울 것 없었던 회사. 1974년 우리나라 최초로 '컬러TV 시대'를 열었고, 88년에는 국내에서 처음 29인치 TV를 만들어 대형 TV시대를 개막했다. 일본 마쓰시다와 제휴한 '아남 나쇼날(현 파나소닉)' 브랜드는 지금도 중장년 세대의 뇌리엔 뛰어난 품질로 남아있다.
하지만 외환위기 고비를 견디지 못해 99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삼성과 LG에 완전히 밀려난 TV사업을 접는 대신, 오디오 분야에만 집중했다. 계속 오디오 제품을 생산했지만 소비자들이 '아남' 브랜드를 접할 수 없었던 건 글로벌 메이커의 제조자생산방식(ODM)으로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 들어 또 한번의 위기가 왔다. 애플의 아이팟 등장으로 오디오 기기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것. 한 부장은 "생존을 위해선 돌파구가 필요했다. 스마트기기가 소프트웨어에서 승패가 갈리듯 미래 오디오 시장의 관건은 무선통신과 연동 가능한 인터페이스에서 얼마나 강점을 지니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에 관한 전문 지식도 인력도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던 아남전자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산하 소프트웨어공학센터의 소개로 MDS테크놀러지를 '멘토'로 만났다. 차영훈 대리는 "제품 기획, 개발, 생산 과정 등 모든 과정의 체질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며 "현장 직원들이 납품 기일 맞추기도 버거운데 한가한 소리 한다며 반발도 심했다"고 전했다.
결국 지난해 큰 사건이 일어났다. 아남전자는 한 세계 유명 오디오회사에서 의뢰 받은 제품을 납품하기 직전 시스템에 심각한 오류를 발견했다. 한국의 기술팀이 급파됐고, 현지에서 구한 기술자 5명과 함께 3,000개 넘는 제품을 일일이 뜯어 오류를 고치고 가까스로 데드라인을 맞췄다. 한 부장은 "전에는 주로 작동에 이상 없으면 배에 실었고 소프트웨어도 외주를 줄 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 일을 통해 겉(하드웨어)보다 안(소프트웨어)이 중요하고 핵심 소프트웨어는 우리 손으로 직접 챙겨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남전자는 현재 공정 하나하나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뜯어고치고 있다. 6명이던 담당 인력은 4배나 늘었고, 그 결과 NIPA가 실시하는 '소프트웨어 현장 적용 지원 사업'의 최우수 사례에 뽑히기도 했다. 매출도 크게 늘어 2년 전 대비 150%의 증가율 속에 올해는 1,800억원 달성이 기대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굴지의 글로벌 오디오회사들도 어떻게 그런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느냐고 놀라며 우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며 "옛 아남전자의 명성을 꼭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안산=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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