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대표적인 서예가 율산 이홍재(56)씨가 최근 대구 중구 봉산문화거리에 서예전시관 겸 작업실인 '도심명산장'을 개관하고 27일까지 '뉴 비전'이란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는 "도심명산장은 서예의 대중화를 위한 전초기지의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일반대중과 적극적으로 교류 및 소통해나가면서 서예를 알리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서예계 행위예술인 '타묵(打墨) 퍼포먼스'의 창시자이자, 파격적 작품세계로 유명한 율산 선생을 만나 도심명산장의 의미와 서예인생 및 철학,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타묵 퍼포먼스가 뭔지 소개해달라.
"음악에 맞춰 무게가 수십㎏나 되는 큰 붓으로 춤을 추듯 글을 치는(打) 일종의 무대공연이다. 한복을 입고 버선발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초대형 화선지 위에 붓으로 글씨를 휘갈기는 퍼포먼스에 기존 앉아서 쓰는 정적인 서예만을 생각했던 관객들은 지휘봉처럼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나의 몸짓과 붓의 기운, 그 과정에 탄생하는 글에 서예의 신세계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도심명산장은 왜 열게 됐나.
"서예전시관 겸 박물관을 만들고자 전통이 서린 한옥을 15년 동안 물색해왔다. 마침 봉산동에 마음에 드는 한옥이 나와 이번에 옮겨오게 됐다. 규모가 좀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만하면 그간 모아온 서예자료와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시공간으로서도 손색은 없겠다 싶다. 이제 후학을 가르치던 덕산동 서예학원의 시절은 가고, 대중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서예의 대중화를 위한 전초기지랄까. 서실 이름이 도심명산장(道心名山藏)인데, '도심 속에 명산을 감추고 있는 곳'이란 뜻으로 읽히겠지만 '감춰진 도의 마음을 키우는 곳'이란 의미도 있다."
-전통 서예를 벗어난 작품세계로 서단의 이단아로 불리는데.
"예술의 생명은 창조, 창작에 있다. 서예도 전통의 재현에만 머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흑백의 단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화선지에 먹이란 공식을 깨고 오방색(황, 청, 백, 적, 흑)을 사용하고 씨앗과 생선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 것 모두 치열한 창작활동의 일환인 것이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한다고 배척하고 이단아라 칭하면 예술의 발전이 어찌 있을 수 있나."
-타묵 퍼포먼스를 펼치는 이유가 궁금하다.
"1999년 대구 '봉산미술제에서 타묵 퍼포먼스를 공식적으로 처음 선보였다. 사람들이 서예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붓을 들고 길바닥에 나간 것이다. 완성된 글씨만을 보여주는 기존 전시회 대신 붓이 움직이는 그 순간의 기운을 직접 느끼게 해준다면 대중들이 새로운 감동을 받지 않을까 해서였다. 서예와 춤과 음악의 만남.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외국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러한 실험이 대한민국 서예 퍼포먼스의 역사를 만든 것이다."
-서예가로의 길은 어떻게 들어서게 됐나.
"초등학교 다니면서부터 나뭇가지와 부지깽이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땅바닥이나 나무, 돌 등에 글씨를 썼다. 붓이나 화선지 구하기가 어려운 시절 아닌가. 이때부터 서예와의 사랑은 시작됐다. 그래서 서예인생 50년이라 말하는 것이다. 한때는 자괴감에 붓을 꺾어본 적도 있지만 한 달로 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한눈 팔지 않고 지금까지 서예만 바라보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
"늘 새로운 작업에 대한 열망과 기대로 들떠있다. 앞으로 100년을 서예가로 더 산다 해도 도전할 게 무궁무진할 것 같다. 서예로 파생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고, 또 종합적인 예술장르도 개척해보고 싶다. 나 자신도 어떻게 변화할 지 모른다. 다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 멈추지 않고 걸어갈 뿐이다."
-현대인들에게 서예에 대해 한마디.
"글씨는 인간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글씨를 쓰는 것에서 예술의 단계로 승화한 서예는 그래서
인생의 멋이 서려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도 서예를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일단 감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서서히 쓰는 단계까지 도전해보길 권한다. 새로운 인생의 맛,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 약력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이사
대구서예대전 심사위원
매일서예대전 초대작가회 회장
국제서예가협회 이사
이현주기자 lare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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