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7월 23일 "뭔가 썩는 냄새가 난다"는 공사장 인부들의 신고로 뉴욕시 맨해튼에 출동한 경찰은 공원도로 인근에 버려진 소풍용 아이스박스 안에서 여자아이의 시신을 발견했다. 따지 않은 콜라캔에 파묻힌, 성폭행 당하고 목이 졸린 소녀의 벌거벗은 시신에는 범인을 추적할 단서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잔혹한 범행에 충격을 받은 대중의 관심이 쏟아졌지만 수사는 피해자 신원도 파악하지 못한 채 답보했다. 뉴욕시경과 맨해튼 검찰로 구성된 수사팀은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2년이 지난 1993년 이들은 자비를 털어 소녀의 장례를 치렀다. 이들이 범인 검거의 의지를 담아 '베이비호프(Baby Hopeㆍ희망의 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소녀의 묘비에는 제보용 전화번호가 새겨졌다. 세인의 관심이 급속히 식어가는 와중에도 수사관들은 현상금 1만2,000달러(1,286만원)을 걸고 소녀의 기일마다 소녀의 몽타주가 실린 전단지를 대대적으로 배포했다. 소녀의 이웃이나 친척들을 수소문해서 찾아가는 한편으로, DNA 채취를 위해 소녀의 시신을 두 차례 발굴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침내 이달 초 "자기 여동생이 살해됐다고 여기는 여자와 대화한 적이 있다"는 결정적 제보가 들어왔다. 수사팀은 제보자가 일러준 여성이 소녀의 언니임을 직감했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를 확인했다. 베이비호프의 신원이 당시 4세였던 앤젤리카 카스티요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수사팀은 카스티요 집안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에 착수, 범행 당시 이혼한 아버지가 카스티요를 기르고 있었으며 그 집에 카스티요의 사촌언니 발비나 후아레스를 포함한 친척 여럿이 함께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12일 뉴욕시경은 베이비호프 사건의 용의자로 카스티요의 사촌오빠 콘래도 후아레스(52)를 그가 일하는 맨해튼 식당에서 검거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고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후아레스는 뉴욕 퀸스의 삼촌 집에 찾아갔다가 카스티요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그 집에 살고 있는 여동생 발비나와 함께 시신을 유기했다. 후아레스는 최근까지 멕시코에서 도피 생활을 했으며, 그의 범행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발비나는 이미 숨졌다고 경찰은 밝혔다. 후아레스는 12일 오후 열린 구속적부심에서 범행을 부인했지만, 법원은 살인 혐의를 인정해 보석을 불허했다. 레이먼드 켈리 뉴욕시경 국장은 "시민들의 지원, 첨단 과학수사, 발로 뛰는 전통적 수사가 어우러진 개가"라고 자평했다.
22년 만에 미제사건을 해결한 수사관들은 벅찬 감격을 드러냈다. 사건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조세프 레즈니크 뉴욕시경 부국장은 "수사 과정에서 좌절감도 컸지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적 분위기는 변치 않았다"며 "우리가 소녀에게 붙여준 베이비호프라는 이름을 기억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뉴욕시경과 맨해튼 검찰을 거치며 수사에 매진하다가 최근 은퇴한 제리 지오르지오는 "2주 차이로 결정적 제보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이훈성기자 h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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