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에 전기 공급이 끊기더라도 폭발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의 성능 시험성적서가 공공 검증기관에 의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새한티이피 등 민간 검증기관의 성능시험 조작 파문에 이어 공공 검증기관도 조작 의혹에 휘말린 것이다. 더구나 공공 기관의 성능시험은 민간 기관의 성적서 조작 파문 이후 재검증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민주당 우윤근 의원에 따르면 한국기계연구원(KIMM)은 지난 7월 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산업기술시험원(KTL)의 용역을 받아 '피동촉매형 수소제거장치'(PAR)의 성능시험을 실시한 뒤 보고서에 '부적합' 의견을 명시했다. 하지만 KTL은 시험 결과를 '적합'으로 명기한 보고서를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제출했고, 전체 시험 과정을 참관했던 KINS는 이 같은 허위사실을 원전 최고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했다.
PAR는 천재지변으로 원자로에 공급되는 전기가 끊겨 냉각기가 제 기능을 못하는 냉각재 상실사고(LOCA)가 발생할 경우 원자로 내부에서 발생하는 수소를 제거해 폭발사고를 막는 장치다.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국내 23개 원전 가운데 18개에 PAR를 설치했고, 이를 모든 원전으로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KIMM은 PAR에 대한 예비 시험 당시 시험설비에 수소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본 시험에서도 비슷한 상황으로 가자 수소 주입을 중단한 상태에서 나머지 시험을 진행했다. 이어 재시험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보고서에 '부적합' 의견을 명시했다.
하지만 KTL은 자체 보고서에 수소 폭발 사실을 누락한 채 '적합', '허용기준 만족'으로 바꿔 기재했다. 이어 '정상 조건에서 시험을 진행했으며 PAR의 변형 또는 손상이 없었다'는 결론을 삽입한 별도 보고서를 KINS에 제출했고, KINS는 이를 원안위에 그대로 보고했다. 원안위는 이를 근거로 지난 8월 "민간 검증기관인 새한티이피의 시험성적서 위조에 따라 PAR 성능을 재검증한 결과 성능 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KIMM의 시험 결과를 위조한 KTL과 성능시험 전 과정을 참관한 KINS 등 공공 검증ㆍ규제기관들이 조직적으로 시험 결과를 조작ㆍ은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원안위 역시 시험성적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서둘러 재시험 결과를 발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우 의원은 "민간 검증기관의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공 검증기관에서까지 부실ㆍ조작 의혹이 불거진 것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진실을 밝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KTL 측은 "PAR 설비 재시험 결과를 조작하거나 은폐ㆍ축소했다는 건 결코 사실이 아니며 모두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시험한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허경주 fairyh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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