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최근 국고 보조금 횡령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경찰 정보관에게 수년간 금품을 건넨 장부를 발견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광주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1일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경찰 정보관에게 금품을 건넨 것으로 기재된 비밀장부를 확보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고위 간부 A씨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장부에는 2009년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를 출입하며 첩보 및 동향을 수집하는 경찰 정보관에게 6, 7차례 걸쳐 금품이 건네진 것으로 기재돼 있다. 실제 장부에는 '정보관'이라는 지출내역 항목이 별도로 있으며, 금품 제공 날짜도 기록돼 있다. 금품 액수는 10만원에서 많게는 수십 만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국고나 시비로 지원되는 운영비 등을 애초 지정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빼돌려 뭉칫돈을 조성한 뒤 이를 사용한 내역을 비밀장부에 적어 놓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정식 회계장부가 아닌 별도의 비밀장부를 작성한 점으로 미뤄 장부에 기재된 지출 항목과 내용 등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한국노총 광주본부를 출입했던 경찰 정보관들을 상대로 직무와 관련해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는지와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또 장부에 등장하는 '정보관'에게 지급된 것으로 기재된 금품은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측이 경찰 정보관에게 관례적으로 건넨 '떡값'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관 금품수수 의혹이라는 예기치 변수가 튀어나오자 경찰은 무척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자칫 이번 사건의 본말이 뒤바뀌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의 국고 보조금 횡령 의혹이라는 본질은 흐려지고, 경찰관 금품수수 의혹만 부각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경찰은 비밀장부에 경찰 정보관의 금품수수 내역이 있는지에 대해 당초에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그런 게 있기는 있다"고 말을 바꿔 비난을 자초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작성한 장부에 (경찰)정보관이라는 지출 항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정보관에게 돈이 건네졌는지, 아니면 A씨가 빼돌린 보조금 등에 대한 지출 내역을 짜맞추기 위해 허위로 기록해 놓은 것인지는 A씨 등을 상대로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A씨 등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일부 간부들이 평소 거래관계에 있던 업체들과 짜고 수년간 고용노동부의 노동절 행사지원금과 광주시 보조금 등을 차명계좌로 수십 차례 돈세탁을 해 빼돌린 것으로 보고 정확한 횡령 수법과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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