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눈뜨기 무섭게 피곤해지는 하루. 그런 날을 '블루 먼데이'라 부른다. 단어의 뜻을 그대로 옮기면 '푸른 월요일'이겠는데, 당최 푸른 느낌과는 거리가 멀어 우리말로는 '월요병'이라는 식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블루 먼데이와 푸른 월요일. 어감이 극과 극이다. '블루 먼데이'로부터는 눅눅하게 가라앉은 한 주가 시작되고 '푸른 월요일'로부터는 밝고 희망찬 한 주가 시작되는 듯하다.
'블루'가 가리키는 색과 '푸르다'가 가리키는 색 자체가 썩 다르지는 않을 텐데, 느낌은 어찌 이렇게 달라졌을까 싶다. '블루'가 우울하다면 '푸름'은 맑고 시원하다. '블루'는 명도를 따라 어두워지고 '푸름'은 채도를 따라 짙어진다. 그러니 '블루스'는 '푸른 노래'일 수 없다.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깃든 구슬픈 음조의 노래들을 어찌 푸르다 할 수 있으리. 마찬가지로 '블루 문'도 '푸른 달'이 아니고 '블루 레이디'도 '푸른 숙녀'가 아니다.
'블루'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우리말은 없는 걸까. 월요일에 붙여 이것저것 생각해 본다. 푸르스레한 월요일? 푸르딩딩한 월요일? 푸르죽죽한 월요일? 아니. 다 고개를 젓게 된다. 우리말의 색채어 스펙트럼이 한참 넓어도 '블루'에 꼭 어울리는 단어는 찾아지지 않는다. 그런 건가. 그렇다면 아무래도 블루 먼데이 대신 푸른 월요일을 맞을 수밖에.
신해욱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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