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으로는 이후 7년 만이고 장편 이후로 3년 만의 신작인 하성란의 소설집 은 오감의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때로 미각이고 후각이며 촉각이다. 작품들은 감각으로 시작해 독자를 새로운 의미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표제작의 주인공 '최'는 잡지 기자다. 2004년 여름 잡지 화보 촬영 차 일본 오사카에 갔다가 홀로 여행에 나선다. 일본어로 금과 은이 '킨'과 '긴'의 비슷한 발음을 갖고 있어서 잘못 알고 찾아간 은각사.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에 나온 금각사를 보러 갔던 건데 그녀는 애먼 은각사 주변만 서성거린다. 대신 최는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최에게 복숭아를 주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이제부터 복숭아를 정말 좋아하게 됩니다!"
복숭아 따위에 휘둘릴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최는 4년 후 숭례문이 불 타는 광경을 지켜 보며 오래 전 여름 은각사에서 먹었던 복숭아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 다녀도 그녀는 그 맛을 다시 느낄 수가 없다.
요리연구가 김은 그에게 맛이란 음식의 맛이 아니라 추억의 맛이라고 알려준다. 김에게 여름을 추억하게 하는 맛은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가 사준 콩국이다. 김과 최에게 맛에 대한 기억이란 장소와 시간, 사람 그리고 맛을 포함한 모든 감각의 총합이 남긴 어떤 것인 셈이다.
에서 감각은 주인공들이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카레 온 더 보더'에서 주인공 '그녀'는 카레향 때문에 스무 살 무렵 만났던 소녀 가장 영은을 떠올리다 대학선배인 김과 보냈던 10년의 모호한 관계를 끝맺는다.
'여름의 맛'에서처럼 하성란의 작품들에서 유사와 차이, 오인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두 여자 이야기'에서는 여기에 '분열'이 더해진다. 남자들은 주인공 최와 오은영이라는 여자를 혼동한 뒤에야 최를 분명하게 인식한다. 그러나 도시를 방문한 최가 도시에 살고 있는 오은영과 이처소재(二處所在)인 것처럼 최는 30여년 전 산에서 길을 잃고 사흘 만에 돌아왔을 때 산에 남은 자아와 돌아온 자아가 이미 분열돼 있었다. 복숭아 맛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것처럼 분열된 두 자아는 결코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성란의 인물들은 이렇게 차이의 간극에서 유영한다.
고경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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