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변증론(apologeticsㆍ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관념체계)의 범주에 속하는 책이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미국 포덤대 신학과 교수인 엘리자베스 A 존슨이 썼다.
"예수와 성령은 세상과 자기를 사랑으로 밀접하게 소통하는 단 하나의 또렷한 신비이다… 신성의 신비는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현실에 개입하는 존재이며…"(73쪽)
책은 20세기 중반 이후 정치, 과학, 철학, 심리학, 문학에서 용도 폐기된 신의 존재를 힘있게 웅변하는 현대 유신론자의 논변을 담고 있다. 그러나 2011년, 미국 가톨릭주교단으로부터 '중등학교 및 대학에서 읽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상의 금서 처분을 받았다. 그 미묘한 균열에, 이 변증론이 기독교의 테두리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괜찮은 인문지식으로 읽히는 여유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 균열에 서서 저자가 얘기하는 '신비'를 21세기 신학의 보편성으로 이해하고 싶다.
해방신학, 여성신학, 생태신학 등 현대 신학의 여러 개척지 풍경을 보여주지만 그러한 입장에 매몰되지 않는다. 이 책이 다루는 핵심은 현 시대 크리스천이 가질 수밖에 없는 실존적 질문들이다. 홀로코스트 속에서 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신은 여성답게 행동할 수도 있는 것인가, 진화하는 세상에서 창조주 성령의 존재는 무엇인가… 해답을 구하다 벽에 부딪쳤을 때, 저자는 낡은 성경 주해서의 페이지 뒤로 숨지 않는다. 되레 무신론이 판치는 논변의 복판으로 전진한다.
예컨대 홀로코스트의 문제. 저자는 대학살을 자초한 독일의 정치신학자들의 연구에서 해답의 단초를 찾는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타인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고통에 저항할 때만 신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저항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예정된 희생이 아니라 주체적 저항의 십자가에 매달려 현존하는 하나님. 여기서 '크리스천은 세상 모든 고통을 기억하고 연대하고 슬퍼해야 한다'는 당위가 도출된다.
교회 안의 남성주의와 백인우월주의,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관점에 대한 현대 신학의 비판적 논변들도 접할 수 있다. 진보로 볼 수는 있겠지만 이단으로 분류할 성격의 얘기들은 아니다. 오히려 강하게 기독의 신을 옹호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구 생태계 속에서 인간의 겸허를 강조하는 근거가, 이 책 284쪽엔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로 나타난다.
"창조질서의 풍성한 전체 무늬는 호모사피엔스로 가는 길목의 몇몇 단계들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하나님이 창조적으로 거하시는 장소이기도 하다…'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사도행전 17:28)' 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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