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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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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

입력
2013.10.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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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짓을 했다. 대학 합격의 기쁨에 취해 입학도 하기 전에 혈혈단신 학과 방을 찾았다. 등록금 납부라는 당초 상경 목적은 간발의 차로 은행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이루지 못했다. 허탈한 마음 한편에 '이왕지사 선배들에게 미리 인사나 드리고 술이나 얻어 마시자'는 기특한 계산이 떠올랐다.

사냥감을 발견한 선배들이 당구장, 하숙집, 아르바이트 현장 등에서 득달같이 달려왔다. 황송한 환대는 6대 1이 겨루는 질펀한 술자리로 이어졌다. 선배 6명은 각각 자신이 몸담은 동아리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관심사가 역사라고 하자 역사학회 소속 선배가 "네가 역사를 알아"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취한 김에 그간 갈고 닦은 고대사 지식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대자 선배들은 기다렸다는 듯 근ㆍ현대사를 논하기 시작했다. 우금치(동학혁명)와 제주(4ㆍ3항쟁), 마산(부마항쟁)과 광주(광주민주항쟁)가 입길에 올랐고, 각자 울고 분노하고 감정이입하며 역사 앞에 섰다. 그리고 속된 말로 완벽하게 필름이 끊겼다.

다음날 주변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집은 난생 처음 100만원이 넘는 목돈을 쥐고 떠난 아들이 감감무소식이라, 선배들은 당돌한 후배 놈이 의식을 잃기 전 등록금을 넣어뒀다는 가방에도, 혹시 했던 호주머니에도 땡전 한푼 없자 안절부절못했다. 숙취 중에도 외투 안쪽 은밀한 공간에 돈을 숨겨둔 기지(?)가 여러 사람 골탕먹인 꼴이 됐다.

그날 술자리가 너무 강렬해 두 가지 다짐을 했다. 첫째, 맛있게 먹었지만 뒤끝이 좋지 않았던 닭 곱창은 앞으로 상종하지 않겠다. 둘째, 고교 시절 한두 줄 대충 배우고 넘어간 근ㆍ현대사를 공부한다.

용케 둘 다 잘 지켰다. 변변치 않은 용돈을 들여 한국사를 '다시 읽고, 거꾸로 읽고, 새로'(당시 책 제목들이 그랬다) 읽었다. 행여 한쪽으로 치우칠까 봐 관련 교양수업도 챙겨 들었다. 엉성하지만 당시 공부가 역사의식을 형성하는 기둥이 된 건 당연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당시 대학생들의 역사공부 방식이 대략 그러했다.

그래도 늘 의문이 따라왔다. '그 수많은 역사의 현장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해답을 준 책이 다. '한 사학자의 6ㆍ25 일기'란 부제처럼 역사를 전공한 저자가 직접 겪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에누리없이 날것으로 담겨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저자의 진솔한 자기 고백은 요즘 식으로 따지면 때론 '종북좌파'의 선동으로, 때론 '꼴통보수'의 주장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좌우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기에"(미망인의 후기) 양쪽을 객관적으로 거침없이 비판할 수 있었으리라. 저자가 서울 수복 후 인공기를 걸었던 깃대에 태극기를 다시 꽂으며 느낀 '후련함'과 '서글픔'은 어렴풋하나마 '나라면 어땠을까'란 묵은 의문의 답으로 남았다.

최근 역사교과서 논란과 각종 의혹을 둘러싼 이념 대립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날 술자리에서 "네가 역사를 아냐"고 묻던 선배는 기본도 안된 교과서나, 누구의 혼외 아들 여부나, 독해마저 힘든 북방한계선(NLL) 논란보다 집값 하락이 속상한 대기업 샐러리맨이 됐다. 더 가슴 아픈 건 저자가 목도했던 이 땅의 대립과 반목이 지금도 여전히 다른 형태(예컨대 역사전쟁이니, 밀양 송전탑 종북세력 운운하는 무리들)로 지긋지긋하게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언론은 여전히 제 잇속 따라 혼란과 갈등을 부추긴다. "지저분한 신문을 자꾸 내어서 귀한 종이만 없애고 간상과 정상배의 협잡할 무대를 제공하는 것 같아서"(1950년 8월 29일)라는 63년 전 저자의 언짢음을 그대로 인용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다.

'적극적 중도'를 지향하는 한국일보 기자라 마음이 더 무겁다. 지금 그리고 여기, 역사 앞에서 저자의 충고를 다시 곱씹는다. "신문기사의 허위보도라고 하면 반드시 어떠한 사실을 날조한 경우에만 한하지 않고 사건의 연속 중에서 일부분을 고의로 묵살해버리거나, 반대로 강조해서 표현하는 것은 독자의 판단을 어긋나게 함에 있어서 허위보도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1946년 4월 22일)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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