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나 도시의 문화 수준의 가늠자는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시민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도시가 진짜 생산력이 있는 도시이다. 그리고 그런 도서관들의 밑동이 바로 대학도서관이다. 세계 유명대학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도서관의 내용이 충실하다는 것이다. 도서관이 대학의 한복판에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도서관(독서실도 고시방도 아니다!)이 바로 대학의 심장이고 학문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대학의 힘은 훌륭한 교수나 똑똑한 학생이 아니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서관과 책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과연 우리 대학의 도서관의 현실은 어떠한가? 어떤 대학은 장서 수를 맞추기 위해 헌책방에서 트럭으로 실어다 옮겼다는 충격적인 소문도 들린다. 그건 대학이기를 포기한 장사꾼의 사업일 뿐이다. 도서관은 그저 책을 보관하고 열람 대출하는 곳이 아니다. 책과 지식에 대한 모든 정보와 체제가 가장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동시에 생산되는 곳이다. 그런 일에 대한 전문가가 바로 사서이다.
200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은 644개, 대학도서관은 523개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공도서관의 관장이나 책임자는 상당수가 일반직 공무원들이다. 시의 한 부서에 도서관이 편입된 까닭에 해당 과의 과장이나 팀장이 맡는 경우가 많다. 대학은 어떤가? 대학도서관의 경우는 거의 다 교수가 도서관장을 차지한다. 대학은 가장 전문화된 지식의 전당이다. 그렇다면 도서관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는 누구인가? 교수가 아니다. 사서이다. 도서관장을 교수들이 돌아가며 차지하는 보직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대학은 적어도 학문에 관한 한 가장 모범적이어야 한다. 대학도서관장의 역할을 이제 전문 사서들에게 넘겨줘야 한다. 그런 모범을 보여야 공공도서관들도 엉뚱한 공무원들이 관장 자리 차지하는 해괴한 일이 없어진다.
한 지방 대학이 사서를 도서관장으로 임명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어떤 대학은 도서관학이나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교수만 관장으로 임명하고 있다. 그게 신선한 충격이라는 것이 사실 슬픈 일이다. 대학도서관을 교수들이 차지해야 한다는 관행도 불문율도 용감하게 깨뜨려야 한다. 그건 교수들 스스로 먼저 선언하고 사서들에게 그 자리를 보장하도록 학내 여론을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도 자기네들 자리 하나 줄어드는 것으로 여겨서 나 몰라라 한다면 그건 대학으로서, 교수로서 소임과 의무를 외면하는 일이다.
학과별 전담 사서를 배치해서 해당 학과 연구자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적합한 자료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에종서비스 등 대학도서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변화와 질적 향상을 이끌기 위해서는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교수 관장이 아니라 전문 사서 관장의 안목과 의욕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다 발전할 수 있다. 사서는 그저 책을 '만지는' 사람이 아니라 책에 관한 전문가이다. 사서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도서관과 학문의 발전을 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학의 심장은 도서관이다. 그리고 그 도서관의 심장은 사서들이다. 이제라도 대학 도서관의 관장은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낡은 사고를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시대, 변화하는 세상을 맞을 것인가? 대학도서관이 과감하게 변화할 때, 자연스럽게 공공도서관들도 따라서 변화하게 된다. 그 변화를 외면하면 죽는다. 그런 절박감이 필요하다, 지금. 윗물부터 맑게 변해야 한다. 그럼 아랫물까지 저절로 맑아진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 빌 게이츠의 말이다. 도서관이 살아있는 도시가 희망을 키운다. 도서관을 살아있게 하려면 사서들에게 일을 돌려주고 맡겨야 한다. 그게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우리는 그런 빌 게이츠를 길러내고 있는가? 도서관이 학교와 도시의 심장이고 자랑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도시의 심장은 과연 도서관인가?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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