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수능 베트남어, 학교엔 없고 학원에만 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수능 베트남어, 학교엔 없고 학원에만 있다

입력
2013.10.10 18:32
0 0

고3 수험생 김모(19)군은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로 베트남어를 택했다. 원래 프랑스어를 공부했지만 고심 끝에 응시과목을 바꿨다. "베트남어가 수능에서 처음 치러져 높은 등급을 받기 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가르쳐 줄 교사가 없다. EBS 교재로 독학하기는 불안해 결국 학원 문을 두드렸다. 그는 "주변에 몇 십만원씩 내고 베트남어 속성 과외를 받는 얘들도 있다"고 말했다.

10일 교육부가 유기홍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처음 수능 과목이 된 베트남어에 2만9,161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다. 지난해 제2외국어 8개 과목 중 절반 가까운 수험생이 택한 아랍어(2만7,844명ㆍ41%)보다 많다. 하지만 가르치는 학교도, 출제할 위원도 부족한 베트남어를 정부가 섣불리 수능 과목으로 지정해 사교육 시장만 배불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베트남어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지난해 '수능의 로또'로 불렸던 아랍어 사태의 재판(再版)이다. 도입 첫 해 수능 문제가 쉽게 출제되는 경향이 있어 적은 시간을 투자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 수험생들이 너도 나도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베트남어의 1등급 컷은 50점 만점에 25점으로 독일어(48점), 프랑스어(46점), 아랍어(39점)보다 크게 낮았다.

고려대ㆍ서강대 등 주요 대학에서 제2외국어 성적으로 사회탐구 1과목을 대체할 수 있게 한 점도 인기몰이에 한몫 하고 있다. 사탐을 못 봐도 성적을 대체할 수 있는 '보험 과목'으로 여겨 상위권 학생까지 베트남어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베트남어 열풍은 사교육 시장만 부풀리고 있다. 전국 1,500여개 고교 중 베트남어를 정식 교과로 가르치는 학교는 충남외고와 수원 권선고가 유일하다. 이정은 충남외고 베트남어 교사는 "베트남어를 배울 곳이 없어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입시학원들은 여름방학 전후로 베트남어 강의를 우후죽순 개설했다. 베트남어 전공자가 적어 학부생들도 과외 시장에서 바삐 불려다닌다. 한국외대 베트남어과 재학생은 "기초부터 기출문제 풀이까지 20회(회당 90~150분) 코스를 이수하면 수능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며 "수업료는 시간당 3만5,000원"이라고 했다.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국내에서 한국외대, 부산외대, 청운대 세 곳뿐이다.

인력이 부족해 베트남어 출제위원 모집 정원 4명을 채우는 데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능을 총괄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는 "국내에서 출제위원을 찾기 어려워 베트남 대학에서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송정남 한국외대 베트남어과 교수는 "수능 문제를 내려면 한 달씩 학교를 비워야 하는데 그동안 학교 수업을 대신 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국제화ㆍ다문화 시대에 다양한 언어를 배우게 하자는 도입 취지가 바로 서려면 정부가 나서 교육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현장 교사들은 조언한다. 박형 수원 권선고 교감은 "베트남어, 아랍어 등 소수 과목의 경우 학교마다 교과 개설이 힘들면 전국에 거점학교를 지정, 인근 학생들이 수업을 함께 듣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