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슬람 반군부 세력에 대한 유혈 탄압을 문제 삼아 이집트 과도정부에 군사원조를 중단한다고 9일 밝혔다. 7월 이집트군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 이후 미국이 내놓은 사실상 첫 제재조치다. 미국은 그러나 원조 중단 범위를 제한하고 민정 이양을 조건으로 원조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이집트와 동맹 관계 유지에 신경 쓰는 모습이다.
미국 국무부는 9일(현지시간) "이집트 정부와 관계는 유지하되 원조는 조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아파치 헬기, F-16 전투기, 하푼 미사일, M1A1 에이브럼스 탱크와 현금 2억6,000만달러(2,789억원)의 지원이 중단된다. 미국의 대이집트 군사원조 규모는 매년 13억달러(1조3,949억원) 수준이다.
미국은 그러나 "이집트를 제재하는 게 아니라 우호관계를 재확인하는 듯했다"는 뉴욕타임스(NYT)의 논평처럼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국무부는 "미국과 이집트는 많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오랜 협력 관계"라며 "향후 지원 여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한 민간 민주정부 수립의 진척에 달렸다"며 원조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가 잦은 시나이반도 치안 지원, 군장교 훈련, 미국제 무기 부품 제공 등 다른 군사원조는 계속된다. 정부 관계자들은 척 헤이글 국방장관과 이집트 군부 최고실력자 압델 파타 알시시 국방장관이 우호적 분위기로 통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이번에도 무르시 축출을 쿠데타로 규정하지 않았다. 쿠데타로 규정할 경우 미국은 인도적 지원을 뺀 모든 원조를 끊어야 한다. 미국의 제한적 제재는 이집트와 30년 이상 이어온 군사동맹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선택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 체결 이래 이집트에 막대한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며 중동 지역 외교·안보 정책의 거점으로 삼아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조약과 군사ㆍ정치적 협력은 계속될 것"이라며 이번 조치에 우회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무르시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을 적대시해온 걸프 왕국들이 이집트군을 적극 후원하는 것도 미국이 과감하게 돈줄을 죄지 못하는 이유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가 이집트 과도정부에 지원한 자금은 미국의 연간 원조액에 맞먹는 12억달러다. 미국이 압박 강도를 높일 경우 이집트군의 주요 지원국인 중국, 러시아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이집트는 미국의 발표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NYT는 이집트 군부가 이슬람 야권 지도자 대부분을 구금하고 반정부 매체들을 봉쇄하며 정지작업을 마친 만큼 미국의 요구대로 민정이양 일정을 진행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이날 살인·폭력 교사 혐의로 기소된 무르시의 재판을 다음달 4일에 연다고 발표, 이달 들어 다시 격화된 군부와 반정부세력의 충돌이 확산될 가능성도 커졌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