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갈등관리시스템 못지않게 정비되어야 할 건 보상체계다. 국책사업반대의 원인이 돈 문제에 있는 건 아니지만, 현재는 피해 주민들에게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만 지급되고 있어 불신과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한다는 지적이다.
밀양에서도 보상문제는 갈등의 한 축이었다. 현행법상 국책사업 후보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한 개별보상은 불가능하다. 강제수용을 하게 되는 사업부지와 관련해서만 보상금이 주어지는데, 그 기준조차 터무니없이 낮다.
전원개발촉진법과 한국전력 내규에 따르면 ▲송전탑 건설부지는 좌우 30m까지 감정가로 ▲전력선이 통과하는 땅(선하지)은 최외측선 3m까지 감정가의 30%만 보상된다. 전자파를 내뿜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 소식에 땅값은 폭락했고, 주변에서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 됐는데, 쥐꼬리만한 보상금을 받거나 아예 한 푼도 못 받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지난 7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밀양을 찾아 "20여년 전에 만든 보상체계를 주민들이 피부에 느끼도록 현실에 맞게 고치겠다"고 말한 건, 정부도 현행 보상체계가 비현실적임을 자인한 것이었다.
결국 정부는 '송ㆍ변전 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 주민 달래기에 나섰다. 지난 7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이 법안은 현재 3m에 불과한 선하지의 보상범위를 345㎸ 선로의 경우 13m, 765㎸의 경우는 33m로 확대했다. 또 송전선 최외측선 좌우 각각 60m(345㎸), 180m(765㎸) 이내는 사업자에게 주택매수를 청구할 수 있게 했다. 개별보상이 가능토록 하는 근거조항도 마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조차 주먹구구식 대응이라고 지적한다. 정정화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비현실적인 보상기준도 문제지만 개별 건별로 보상 시스템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민반발이 거세지면 사태해결에만 급급, 보상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만 대처하는 정부가 '저항하면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만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 후유증이 대표적 사례다. 2003년 전북 부안에서 홍역을 치른 정부는 방폐장 유치를 위해 파격적 지원방안들을 제시했고, 결국 경북 경주가 주민투표를 거쳐 유치에 성공했다. 이때 워낙 보상 수준을 높여놓는 바람에, 위험도가 훨씬 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리장은 보상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돼 버렸고, 결국 정부는 후보지를 선정하는 데 실패했다. 정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결국 정부가 합리적인 보상안을 만들지 못해 백기투항을 했다는 뜻"이라며 "개별 건이 아닌 전체 국책사업 보상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통일적인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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