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에 낙엽이 나뒹굴 때면 뿌연 김에 설설 끓는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칼칼한 매운탕도 좋고 김치찌개도 당기지만, 역시 후루룩 한 사발 하기로는 깍두기에 설렁탕만한 게 없다. 우윳빛 진한 육수를 내는 데는 육고기와 쇠뼈가 함께 쓰인다. 고기 육수만 맑게 우려낸 국물이 곰탕이라면, 각종 쇠뼈와 고기를 함께 넣고 푹 고아낸 국물이 설렁탕이다. 또 뼛국물 중에 최고로 치는 사골국은 소의 네 다리뼈, 즉 사골(四骨)만을 넣고 고아낸 것이다.
▲ 설렁탕이나 사골국을 우려내는 데는 건강한 숫소의 속이 꽉 찬 사골을 으뜸으로 친다. 잡뼈와 함께 쓰든 사골만 쓰든, 최소 한나절(6시간 내외) 이상 뭉근하게 고아낸 뽀얀 국물은 구수하고 감칠맛이 그만이다. 양질의 콜라겐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해 예로부터 더위와 추위를 이기는 대표적 보양식품으로 여겨졌다. 블로거 김영조씨에 따르면 1920년대 대중잡지 에는 '한 그릇 두 그릇 먹기 시작하면 누구나 자미를 드려서 자긔 마누라의 치마감 사줄 돈이라도 안이 사먹고는 견듸지 못할 것'이라는 촌평까지 있었단다.
▲ 설렁탕이나 사골국의 인기가 흔들린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먹을 게 흔해지고, 오히려 비만이나 성인병이 문제가 되면서 부지불식간에 기피음식처럼 됐다. 지방이 너무 많다거나 칼슘도 별로 많지 않다는 TV 고발프로그램이 잇따르고, 자칫 소금 간을 너무 짜게 하기 십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집에선 환절기에 맞춰 으레 사골국을 고아 먹기도 했으나, 요즘 주부들에겐 몇 시간씩 국물을 고아내는 일 자체가 번거로운 일이 됐는지 모른다.
▲ 중국산 사골엑기스도 심심찮게 문제가 됐다. 지난 5월에는 서울 시내 유명 설렁탕집들이 유통기한이 꽉 찬 수입산 우족 등 불량 쇠뼈로 국물을 낸 저질 설렁탕을 팔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골의 인기가 바닥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10년 전 ㎏당 2만5,403원이었던 사골 경락가격이 요샌 10분의 1 수준인 2,800원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이 참에 사골 좀 사다가 식구들과 함께 고아 먹어야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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