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사태는 자금난에 빠진 산업자본이 금융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보여준 '교과적인 금융사고'다. 이처럼 예상 가능한 수법으로 금융사를 통해 부실 계열사에 불법적으로 자금을 공급했는데도, 금융당국은 문제가 커지기 전에 미리 규제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금산분리를 감시하는 금융감독망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구멍은 부실한 계열사 기업어음(CP)을 계열 증권사를 통해 아무런 제재 없이 팔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달 30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3개사가 발행한 회사채와 CP 1조9,334억원 중 1조3,311억원어치가 동양증권을 통해 판매됐다. 동양그룹의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등급인 'BB'급이어서 대부분 판매사들이 기피했기 때문이다. 동양증권이 아니었다면 동양그룹은 CP와 회사채 판매가 어려웠던 셈이다.
판매 과정도 문제였다. 동양증권은 기관투자가에게 투자부적격 등급의 채권을 팔기 어렵자 7~8% 후반대의 고금리를 내세워 상대적으로 정보에 어두운 개인 투자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판매했다. 개인투자자의 피해규모가 4만 명을 넘어선 이유다. 금융당국은 2011년 동양증권에 대한 종합검사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투자부적격 채권을 계열사를 통해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도입했지만, 사태가 커질 대로 커진 이달 24일부터나 시행될 예정이다.
동양그룹이 소유한 두 개의 대부업체도 그룹의'사금고'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동양그룹은 자금난이 본격화된 2010년 동양파이낸셜대부와 티와이머니대부를 통해 잇따라 대부업에 진출한다. 동양파이낸셜대부가 1년 반 동안 다른 동양 계열사들에 빌려준 누적 금액은 1조5,621억 원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동양그룹 계열사 간 차입된 전체 금액의 91.2%에 해당된다. 심지어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 등에는 저리로 자금을 빌려준 혐의도 받고 있다.
이 대부업체들은 자산 100억원 이상으로 모두 금감원의 직권검사 대상 회사였다. 하지만 현재 대부업체에 대한 금감원의 검사는 소비자 관련 여신분야에만 집중돼 있다. 금감원은 올 6월 대부업 검사실을 신설하는 등 대형 대부업에 대한 종합적인 감독을 강화하고 나섰지만 대기업 계열 대부업체들의 계열사 지원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전문가들은 동양사태가 다른 대기업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작년 기준 금융계열사의 그룹 회사채 발행 비중은 동부가 35%가량이며 SK와 삼성도 각각 22.5%와 18.5% 수준이다. 또 자산 100억원 이상 대형 대부업체 100군데 가운데 20여 곳은 동양과 같은 재벌기업 또는 일반 대기업 계열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를 통한 계열사 펀드 판매나 퇴직연금 몰아주기, 자산운용사 나 저축은행을 통한 모기업 지원 등도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감독규정은 허술하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기업 금융계열사들은 모기업이 위태로워지면 사금고와 다를 바 없는 행태를 종종 보인다"며 "모기업의 부실이 금융계열사로 전이될 수 있는 만큼 계열사들의 그룹 지원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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