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수원 노숙소녀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유죄가 확정됐던 30대 지적 장애인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앞서 이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던 관련자 6명도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바 있어 검찰과 경찰의 강압에 의한 짜맞추기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범인으로 몰렸다가 6년 만에 억울함을 벗은 7명은 국가배상 청구를 진행중이거나 검토하고 있다.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 김정운)는 10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폭행) 혐의로 기소된 강모(35ㆍ정신지체 2급)씨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의 자백이 일관되지 않고 증거도 부족해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판결로 2007년 5월 17일 새벽 수원의 한 고교 화단에서 노숙자 김모(당시 15세)양이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의 피의자로 몰렸던 7명이 모두 누명을 벗게 됐다.
변호인 등에 따르면 이들이 누명을 쓰게 된 것은 노숙소녀 살인 사건 발생 수일 전 수원역 앞에서 여성 노숙자 김모(25)씨를 폭행한 사실 때문이었다. 경찰은 "이들이 며칠 전 한 노숙여성을 심하게 폭행했다"는 한 노숙자의 진술을 토대로 수원역에서 노숙하던 강씨와 또 다른 지적 장애인 정모(32)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붙잡아 자백을 받았다. 이후 강씨는 "수사를 받다가 무서워 자백했다"고 했고, 정씨는 "내가 때린 여자의 옷과 숨진 소녀의 옷 색깔이 노란색으로 같다는 기억이 나 내가 때린 사람이 죽은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결국 경찰과 검찰은 자백을 근거로 기소해 강씨는 벌금 200만원, 정씨는 징역 5년이 확정됐다.
그러나 수원지검은 이듬해인 2008년 1월 수감 중인 한 소년수로부터 제보를 받아 수사를 벌인 결과 강씨 등은 단순가담에 불과하고 가출 청소년 최모(당시 18세)군 등 5명이 범행을 주도했다며 이들을 김양 살해범으로 기소했다. 수감 중이던 정씨와 강씨는 최 군 등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나는 물론 가출 청소년들도 김양 사망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당시 수원역에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다가 오히려 검찰로부터 위증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최 군 등은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 받았지만 2009년 1월 서울고등법원에 이어 같은 해 7월 대법원에서 "혐의를 인정할 물증이 전혀 없고 자백의 경위 또한 석연치 않아 진술의 진실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또 "수사기관의 회유에 허위로 자백했다"며 만기 출소한 정씨가 청구한 재심에 대해 서울고법 형사10부도 지난해 10월 같은 이유로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마지막 피고인이었던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수원역에서 범행장소인 수원의 한 고등학교까지 굳이 데려갈 이유가 없다"며 "수사기관이 자백을 종용하는 취지의 진술을 한 정황도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건 초부터 강씨 등 7명에 대한 변호를 맡아왔던 박준영 변호사는 "당시 소년수가 다른 노숙자 폭행사건과 노숙소녀 살인사건을 착각하고 제보한 사건을 검찰이 끼워 맞췄다"며 "5년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정씨는 물론 강씨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수원=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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