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중국 예술가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첫 테이프를 끊은 이는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인 화가 펑정지에(45). 19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펑정지에 개인전은 2007년 전후에 그린 대표작부터 2013년 최신작까지 45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일반적인 해외 유명 작가의 초대전과는 다르다. 펑정지에는 최근 제주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에 땅을 사들여 화실을 지었다. 제주를 작업 거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2년 전 베이징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베이징 갤러리문 박철희 대표와 이야기하다가 제주도를 알게 됐다"며 "두 달 후 제주도를 처음 찾았는데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끌려 작업실을 짓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펑정지에가 제주에 작업실을 지은 이후 첸페이, 로지에, 쉬저 등 중국인 화가 3명이 추가로 제주도에 땅을 매입했다. 펑정지에만큼의 유명하진 않지만,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젊은 화가들이다.
중국 화가들의 제주도 유입을 주도하는 곳은 국제예술특구 조성을 위해 5월 설립된 아시아예술경영협의회다. 박철희 베이징 갤러리문 대표와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 협회는 7일 휘현산업개발과 국제예술특구를 위한 투자계획협약(MOU)을 체결했다. 휘현산업은 가구회사 한샘의 자회사다. 한샘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에 다빈치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예술 특구는 이 부근을 중심으로 조성될 전망이다.
김윤섭 소장은 "펑정지에 개인전이 열리는 날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현역 작가 60여명이 오기로 했다"며 "이중 최소 10명은 제주도에 작업실을 여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국 유명 화가들이 잇달아 제주도에 자리를 잡는 이유는 비자가 필요 없는 국제자치구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비해 땅 값이 싸고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게다가 최근 국제학교 등 외국인들을 위한 인프라도 풍부해져 아예 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잡는 것을 고려하는 이도 있다.
펑정지에를 비롯한 중국 예술가들이 제주에 몰리게 되면 한국 미술계에 미치는 파장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김창열, 박서보 등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이 제주도 정착을 준비하거나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 제주도의 예술적 위상은 크게 올라갈 전망이다.
김윤섭 소장은 "세계 미술시장이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그 주역들이 제주도로 몰린다면 국내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유명 작가들을 만나기 위해 전세계의 애호가와 전시 기획자들이 제주로 모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향후 인도와 인도네시아 현역 작가들도 끌어들여, 중국 798 예술특구를 모델로 한 한국 주도의 국제예술특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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