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서울 영등포구 한 예식장에서 결혼한 A씨 부부는 예식 후 비용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예식장 측의 황당한 요구에 분통이 터졌다. 계약 당시 예식장은 '최소 지불보증 인원' 300명을 요구했다. A씨 부부는 이 인원을 채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다른 예식장도 사정이 비슷해 어쩔 수 없이 계약서에 서명했다. 예식 당일 식사를 한 하객은 신랑측 130명, 신부측 161명으로 모두 291명. 계약대로라면 식권 300장 값만 내면 되지만 예식장은 61장 값을 더 요구했다. 편의상 신랑 200장, 신부 100장으로 나눠 최소 지불보증을 했는데 신부측이 61장을 더 썼으니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경사스러운 날에 얼굴을 붉히기 싫었던 A씨 부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지불했다.
예식장들이 피로연 음식을 미리 장만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요구하는 '최소 지불보증'은 예식업계에서 관행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이 때문에 신혼 부부들이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르려 해도 마땅한 식장을 구하기 어려워 뜻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A씨 사례처럼 이 같은 관행을 악용한 각종 편법까지 동원되고 있지만, 이를 규제해야 할 관계 당국은 "일일이 단속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A씨 부부는 한국소비자원에 진정을 해 부당하게 지불한 추가 요금을 돌려 받았다. 하지만 법률 정보에 어둡거나 '수십만~수백만원 때문에 귀찮은 일을 겪고 싶지 않다'며 적극 대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식장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런 점이다.
단순히 최소 지불보증을 요구한 것만으로는 피해 구제를 받기 어렵다. 올 3월 대구 수성구 예식장을 이용한 B씨 부부가 이런 사례다. B씨 부부 역시 '식권 최소 300장 구입'을 조건으로 계약했는데, 예식이 오후 3시여서 식권 40여장이 남았다. 이들은 '남은 식권은 버릴 수밖에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예식장 측에 "남은 음식이 아까우니 인근 보육원에 기부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예식장 직원은 코웃음을 쳤다.
B씨는 법적인 대응을 강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최소 지불보증의 존재를 알고 계약을 했기 때문에 불공정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현재 한국소비자원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원 소속 이선주 변호사는 "현행법상 최소 지불보증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소 지불보증을 악용한 피해 사례가 적지 않은데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가 신고를 하면 해당 예식장을 단속할 수 있겠지만, 수많은 개별 계약을 다 들여다볼 수 없어 일괄 단속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YMCA 시민중계실 성수현 간사는 "예식장의 불공정 거래 관행은 일반인들도 다 아는 뿌리깊은 문제인데 공정위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B씨도 "정부가 하객을 수백 명 모으지 못하면 예식장도 잡기 어려운 상황을 외면하면서 '결혼 간소화'를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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