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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10일]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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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10일] 신발

입력
2013.10.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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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동막리 앞 바다에 물이 빠져 광활한 개펄이 펼쳐졌다.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개펄은 두근거림이고 두려움이었다. 정강이까지 푹푹 빠지거나 발만 겨우 빠지는 데도 있었다. 금방 물 빠진 데까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마음만 앞장서서 걸었다. 개펄을 걸을 땐 바로 앞만 봐야 지루하지 않았다. 뒤에 쳐져 따라오는 사람은 빠진 발을 빼내기에도 급급했다. 동막리 개펄은 전체가 아주 멋진 신발이었다.

언젠가 동료 시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갯바람소리가 씽씽 들리고 있었다. 시인은 신이 나 있었다. 동네 청년들을 따라 바다 일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게에 숭어를 한 짐 지고 돌아오고 있었다. 숭어가 팔딱거리고 있었다.

"나 고기 짐 지고 나가는 길에 신발 자랑하려고 전화했어. 난 지금 지구를 신고 있어. 참 부드러운 신발이야.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는 신발. 여기엔 그런 신발들이 지천에 널렸어. 멋지지 않아?"

동료 시인은 흥분해 있었다. 신발을 갈아 신는 기쁨. 누가 그렇게 많은 신발을 시시때때로 갈아 신으며 걸을 수 있을까.

나는 박하지를 잡기 위해 그물구럭을 준비했다. 바지락이나 좀 캐서 속을 풀 요량으로 호미도 준비했다. 개펄은 기껏해야 몇 백 미터 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대중으로 보는 거리는 믿을 게 못되었다. 뒤따르는 사람은 같이 가자고 발걸음을 붙들었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 물 빠진 곳까지 가서 돌을 뒤집어 박하지를 잡고, 호미로 개펄을 긁어 바지락도 캘 생각이었다.

동막리 개펄은, 여느 개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길이와 넓이를 갖고 있었다. 나는 주저앉고 싶었다. 이렇게 꾸물거리다 물보다 걸음이 더뎌 수장되는 건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뒷사람을 기다리다 걷기를 반복했다. 개펄에 난 도랑으로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름 태양은 피를 다 말리는 것 같았다. 나는 운동화를 벗어 그물구럭에 넣고 질질 끌었다.

그는 더는 못 가겠다고, 돌아가자고 보챘다. 나갈 힘은 남겨둬야 하지 않겠느냐, 거기까지 가야 할 이유가 뭐냐며 걸음을 멈췄다. 다리에 쥐가 나 더 이상 가지 못하겠다. 나를 업고 나갈 힘이 있으면 가자고 했다. 몇 백 미터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쉬움이 컸다. 개펄은 줄잡아 2킬로미터가 넘었다. 웬만한 산을 오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나온 발자국이 비뚤비뚤 찍혀있었다.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바닷가 자갈밭에 도착했다. 물웅덩이에 운동화를 헹궈 신고 돌아갈 참이었다. 그의 운동화는 짝이 맞는데 내 운동화는 한 짝이 비었다. 그물구럭 한 쪽이 터져 있었다. 질질 끌고 온 그물구럭에서 운동화 한 짝이 새나갔다.

그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얼마 전에 바다에 놀러 가 신발을 잃어버린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발을 잃어버린 친구는, 건강하던 아버지를 잃었다. 신발을 잃어버리고 채 한 달이 안 되어서였다. 물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면 가까운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가까운 사람들의 근심어린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는 물이 들어오기 전에 운동화를 찾아야 했다. 다시 개펄 신발을 갈아 신으며 운동화를 찾아 나섰다. 무릎에 손을 짚고 찾아간 운동화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빼내기 어렵다는 말이 떠올랐다. 운동화를 찾아 들고 나가야 하는 길이 길어졌다.

운동화는, 우리가 돌아 나온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돌아오는 길은 배로 힘겨웠다. 내 발에 맞는 운동화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자갈밭에서 그물구럭을 돌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응원을 했다. 마치 헬기가 프로펠러를 돌리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머릿속에서도 프로펠러를 돌렸다.

이윤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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