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에 흔히 넣어먹는 친숙한 한약재 황기는 가을철에 수확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잘 마른 가을 황기를 샘플로 보여줬던 한약상이 계약 체결 뒤 봄에 수확한 황기를 내놓았다면 이는 사기 범죄에 해당할까. 이에 대한 법원의 1, 2심 판단이 엇갈렸다.
서울 제기동 약령시장에서 한약도매업을 하는 A(52)씨는 2010년 지인에게 빌린 3,000만원을 갚을 돈이 부족하자, 중국에 있는 자신의 밭에서 재배하는 황기를 한약상 B씨에게 팔아 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듬해 1월 A씨는 가을에 수확한 황기 샘플을 B씨에게 보여주고 계약을 했다. 같은 해 3월 말까지 황기 1만근(6톤)을 B씨에게 공급하고 3,800만원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A씨는 3,700만원을 선불로 받아 그 중 3,550만원을 빚 갚는 데 썼다.
B씨는 약속대로 황기가 준비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해 3월 중국의 A씨 밭을 직접 찾아갔다. 황기는 아직 수확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B씨는 "일주일 안에 수확할 수 있다"는 A씨 말을 믿고 귀국했다. 얼마 후 A씨가 황기를 수확해 샘플을 보여주자 B씨는 돌연 "황기는 가을에 수확해야 품질이 좋고 봄에 수확하면 상품 가치가 없다"며 황기 수령을 거부하고 A씨를 고소했다. 결국 A씨는 사기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됐다.
지난 2월 1심 법원은 "A씨가 당시 중국에서 황기를 재배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계약 당시) B씨에게 보여준 (가을)황기를 보유하고 있지 못했고 이를 공급할 능력도 없었다"며 유죄로 판단, A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강성국)는 "계약 당시 A씨가 B씨에게 가을에 수확한 것으로 보이는 황기 샘플을 보여준 것은 사실로 인정된다"면서도 "가을에 수확한 황기와 봄에 수확한 황기가 품질이나 상품 가치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객관적 자료가 전혀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황기는 가을에 수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해도 형사상 사기죄가 인정되려면 가을 황기와 봄 황기의 상품 가치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검찰이 입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B씨가 중국에서 봄 황기를 직접 둘러본 뒤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도 무죄 근거로 들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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