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구 3억명 중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은 16%인 4,700만명 정도다. 미국에서 의료보험 없이 살려면 파산을 각오해야 한다. 아이 감기 진료하는데 10만원 이상 들고, 자연분만하는데 1,000만원이 넘게 든다. 큰 아이 이마가 조금 찢어졌는데 한국이라면 몇 만원이면 될 것을 200만원이 넘는 청구서를 받은 경험도 있다. 암 같은 중병에라도 걸리면 대책이 없다. 한인들이 비싼 항공료를 물면서까지 한국에 와서 치료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진국 중 보편적 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다.
▲ 미국 정부폐쇄를 초래한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은 지난해 대선에서 오바마와 맞붙었던 공화당의 롬니가 원조다. 2006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롬니는 전 주민(州民)을 대상으로 건보 가입을 의무화했다. 오바마가 공약 1순위로 추진했던 건보 개혁은 매사추세츠를 모델로 했다. 그런 롬니가 대선에서는 "집권하면 오바마케어를 쓰레기통에 처박겠다"고 해 오바마측으로부터 '롬니지어'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롬니와 기억상실증을 뜻하는 앰니지어(amnesia)를 합한 말이다.
▲ 건보 개혁은 민주당 후보들이 주로 추진했지만 맨 처음 도입하려 했던 사람은 1912년 대통령에 재도전한 공화당의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다. 민주당 윌슨 후보에 패해 무위로 돌아갔지만, 이후 건보 개혁은 정가의 단골 이슈가 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트루먼, 클린턴 등도 야당의 정치공세에 휘말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롬니가 건보 개혁을 하면서 처음 법제화한 가입 의무화와 불이행 시 벌금부과에 대해 해리티지재단 등 보수진영이 지지했던 것은 아이러니다.
▲ 공화당이 오바마케어에 결사 반대하는 이유는 세가지다. 1,0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재정부담, 병원 기업 및 보험ㆍ제약업계의 반발, 그리고 보험 강제가 시장과 민간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가치에 배치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수혜층이 흑인, 히스패닉, 불법이민자 등 민주당 지지자들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돈다. 100년 넘게 되풀이돼온 건보 논쟁, 이제 끝낼 때도 되지 않았을까.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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