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한쪽은 유명 인사에다 재력을 지닌 나이 지긋한 인물이고, 다른 한쪽은 가진 게 젊음밖에 없는 청춘이다. 당연하게도 한쪽의 물량 공세가 일방적으로 이어지고 둘은 물질을 기반으로 든든한 애정의 성을 쌓는다. 여느 사랑처럼 열기는 시들고 둘 사이에 권태와 의심과 강박이 찾아온다. 유명 인사 주변엔 새로운 사랑이 풍문처럼 맴돌고 결국 오래된 사랑은 불신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불미스러운 마무리. 영화와 TV드라마와 소설 등 갖은 서사 매체들이 마르고 닳도록 활용해온 흔하디 흔한 줄거리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모두 남자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세인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운 사랑은 보다 애절하게 진행될 것이기에.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진척시키는 영상 지휘자가 한때 천재로까지 여겨지던 명감독이라면. 게다가 남성미 넘치는 선 굵은 연기로 영화 팬들의 뇌리에 새겨진 스타 배우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스크린을 장식한다면. 그렇고 그런 이야기는 영화 팬들의 눈과 귀를 당기기 충분해진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그런 대중들의 호기심 이상을 충족시키고 남을 작품이다. 뜨거운 사랑이 있고 차가운 이별이 있으며 영락하는 삶의 페이소스가 담겨 있다. 알록달록한 쇼 비즈니스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그 세계의 냉혹한 작동 원리도 가늠할 수 있다. 보기 드문 수작이다.
빼어난 피아노 연주와 화려한 쇼맨십으로 지난 세기 후반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리버라치(마이클 더글러스)와 그의 연인 스콧(맷 데이먼)의 애증이 스크린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우연히 자리를 함께하게 된 뒤 이어지는 리버라치의 애정 공세에 스콧이 무릎 꿇으면서 10년에 걸친 애정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연인처럼 부자처럼 감정의 끈을 동여맸던 두 사람이 사랑하다 다투고 다시 사랑하다 다툰 뒤 등을 돌리는 과정이 고밀도로 전개된다.
구강암을 딛고 스크린에 복귀한 더글러스의 노출(심지어 대머리까지)을 아끼지 않는 연기가 놀랍다. 그는 처진 뱃살을 드러내며 남자를 향한 정욕을 표출하곤 하는데 일생의 연기라 해도 좋을 듯하다. 데이먼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지만 그 앞에선 빛을 잃는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연출은 더할 나위 없다. 리버라치와 스콧이 서로 사랑하고 의심하며 농밀한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장면 하나하나 섬세한 세공술로 보여준다. 26세에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대상)을 거머쥔 이 영민한 감독은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할리우드의 이면을 살피고 삶의 비의를 탐색한다. 젊은 작가로 각광 받다 한때 부진의 늪에 빠지기도 했고 명성에 걸맞지 않게 상업영화 '오션스' 시리즈를 연출하기도 했던 그의 영화적 부침이 엿보인다. 소더버그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영화 연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앞으로 TV 드라마 연출에 집중할 예정이다.
중장년 관객이라면 영화 속에서 눈 여겨봐야 할 배우가 하나 더 있다. 리버라치와 스콧의 성형수술을 돕고 스스로도 성형 중독에 빠진 듯한(그는 술을 마실 때도 턱 관절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잭이다. '아웃사이더'와 '영 블러드' 등으로 1980년대 청춘의 상징이었던 로브 로우가 연기했다. 원제 'Behind the Candelabra'. 9일 개봉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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