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와 관련, 자주 인용되는 '아버지와 까치' 이야기가 있다. 치매 노인이 창 밖을 보다가 아들에게 물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요." 조금 있다 아버지는 또 물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라니까요." 아버지가 다시 세 번째 묻자 아들은 "몇 번이나 대답해야 아시겠어요. 까치라고요"라며 화를 냈다. 그 때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범아, 너는 어렸을 때 백 번도 더 물었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빠짐없이 기꺼이 대답해주셨다."
▲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가슴이 찡했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께 섭섭하게 해드렸던 일들이 떠올라 자책했다. "다음에 뵈면 어떤 말씀이든 잘 들어드리자"는 다짐도 했다. 그러나 그 때뿐이었다. 막상 뵈면 오래된 레코드처럼 반복되는 이야기에 이내 지루해져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뜨곤 했다. 얼마 전 편집국 폐쇄 등 한국일보 사태가 났을 때도 아버지는 깊은 근심을 어렵게 꺼냈지만, 내 대답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시라"는 게 전부였다.
▲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 아버지에 무덤덤한 아들도 자기 자식에는 온 정성을 다하고, 그 자식은 그 아버지에 심드렁한 법. 내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릴 적 같이 놀아달라며 출근도 못하게 떼를 썼던 아들들이 20대 한창 나이가 되자 부모보다는 친구 만나고 데이트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 틈 나는 대로 아들 삼형제와 2대 2 농구를 하며 친구 같은 부자 모델을 만들었다고 자부했지만, 아들들 얼굴을 보기 힘든 요즘 그게 착각임을 깨닫곤 한다.
▲ 어제 입대한 둘째를 위한 이벤트도 그랬다. 아내는 안쓰러움 때문에 1주일 전부터 자리를 마련하려 했지만 삼형제를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주말 다섯 식구가 억새가 장관인 상암동 하늘공원에서 가을을 만끽하고 저녁엔 함께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들들은 점심 식사가 끝나자 머리를 긁적이며 "친구들과 만나야 해서 저녁은 곤란하다"고 했다. 갑자기 지방에 계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아버지를 뵈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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