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던 이재용 전 한진중공업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국감 증인으로 망신 줘서 영도조선소가 회복될 수 있다면 백 번 천 번 망신을 당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인들 사이에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를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각 상임위에서 기업인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의원들의 망신주기식 질의방식과 무차별적 증인 출석 요구 등 삐뚤어진 국감 문화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와 갑을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고 관련 업계나 재계 인사들에 대한 증인 요구가 급증하면서 국감 문화에 대한 개선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국정감사나 청문회에 기업인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경우 의원들은 쟁점에 집중해 차분히 질의하기 보다 호통부터 치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한마디로 증인을 존중하는 자세가 돼 있지 않다. 일부 의원들은 주요 기업인이 증인으로 나오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게 목적이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없지 않다. 때문에 기업인들은 "나가 봐야 의원들 호통에 망신만 당할 게 뻔하다"며 어떡하든 국감 출석을 피하려 한다. 결국 이러한 국감 문화가 증인 출석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의 큰 요인인 셈이다.
증인들을 불러 놓고 마치 범인 심문하듯이 몰아붙이면서 답변 기회를 주지 않고 넘어가는 일도 잦다. 물론 의원들은 "제한된 시간에 증인으로부터 쟁점 부분에 대한 답변을 끌어내고 다른 의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증인을 밀어붙이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론을 지적하고 있다.
무차별 증인 채택도 바꿔야 할 국정감사 문화로 지적되고 있다. 의원 1인당 많게는 15~ 20명까지 증인 채택을 요구하다 보니 올해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들은 200명 이상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모 기업의 대표이사는 이번 국감에서 무려 3군데 상임위로부터 동시에 증인 출석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한 상임위에 증인이 과도하게 출석하는 경우 막상 질의를 한번도 받지 못하는 증인이 생기는 등 부실 질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정무위 국감에서 26명의 재계 증인 중 이형희 SKT부사장 등 14명 정도만 질의를 받고 나머지 12명은 질문 한번 받지 않고 하루 종일 회의장만 지키다 집으로 갔다. 2011년 증인으로 출석한 모 외국인 은행 CEO는 10시간 넘게 자리를 지켰지만 채 10분도 발언을 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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