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7, 8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선보인 '균형외교'가 효과를 볼 지 주목된다. 주요 우방인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지만 제약요인이 많아 자칫 위험한 줄타기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균형외교는 노무현정부의 그것과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미중 양국 사이에서 섣불리 중재 역할을 자임하는 게 아니라 이들 국가에 대한 설득을 강화하고 걸림돌을 제거해 양측 모두와의 관계 수준을 높여나가려는 구상이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8일 "마치 자동차 얼라인먼트를 조정하는 것과 같다"며 "그래야 차가 앞으로 잘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비유했다.
박 대통령이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취임 후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에 대한 공조를 재확인한 것도 그 일환이다. 특히 시 주석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물론 "추가적 핵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며 보다 분명하고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상황에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대화 재개를 둘러싼 한국, 미국, 일본과 중국, 북한, 러시아의 전통적인 3각 대립구도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와 달리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두고 저울질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박 대통령은 당초 TPP 참여에 관해 거론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우리의 궁극적 목표인 아태자유무역지대(FTAAT)라는 큰 강을 향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TPP 같은 다양한 지류가 나가야 한다"고 밝히는데 그쳤다.
TPP는 중국이 구심점인 RCEP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질서 패권을 놓고 겨루는 상황인 점을 고려해 미국이나 중국 중심의 지역경제 통합 논의 대신 포괄적인 자유무역체제에서 출구를 찾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신 TPP 체결에 대비해 TPP 회원국들과의 양자회담을 잇따라 열고 개별적인 FTA 협력에 속도를 냈다. APEC 정상선언문에 "투명하며 비차별적이고 포용적인 다자무역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아태연구부 교수는 "TPP에 참여할 여지를 남겨두면서 실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점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이번 APEC을 통해 선진국과 개도국간 가교적 리더십을 강조하며 중견국으로서의 역할을 부각시킨 것도 균형외교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활동공간을 넓혀 궁극적으로 동북아 지역에서의 발언권을 높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미중간 힘겨루기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과 한중간 안보협력을 동시에 강화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사일방어체제(MD)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우리에게 돈을 벌어가면서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냐고 중국이 반발할 우려가 크다"며 "균형외교라고는 하나 강대국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발리=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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